문화재청, 반가사유상 반출 금지 왜 번복했나

문화재청, 반가사유상 반출 금지 왜 번복했나

입력 2013-08-09 00:00
업데이트 2013-08-0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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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국립중앙박물관 압박에 찜찜한 ‘양보’

문화재청은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국외 전시를 허용하기로 입장을 바꾸면서 “대승적 차원의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양보한 것일 뿐 승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가사유상의 국외 전시를 둘러싼 논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10월 29일부터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을 갖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에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국보 12점, 보물 14점 등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대여하기로 하고 이들에 대한 국외 반출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문화재보호법상 국외반출 허가권자는 문화재청장이지만 그에 앞서 문화재위원회(동산분과)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문화재위원회는 2월 14일 회의에서 격론을 벌인 결과 국외 반출 대상 국보·보물급 문화재가 너무 많다는 이유 등을 들어 보류 판정을 내렸다.

그러다가 4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 21건 26점에 대한 국외 반출을 ‘조건부 가결’했다. 유물 운송, 포장, 해포담당 등과 관련된 서류를 보완해 제출하고, 장기간 국외 반출하거나 대량의 유물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을 자제권고하는 조건이었다.

가까스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너무 자주 국외에 나간다며 반출을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반출 허가를 신청한 목록에서 반가사유상을 포함한 3건 3점을 제외한 18건 23점만 반출을 허가한다고 지난달 29일 공식 통보했다.

소중한 문화유산의 훼손을 막자는 취지였지만, 신라시대 최고 유물로 알려진 반가사유상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 같은 전시회가 될 게 뻔했다.

더군다나 국립중앙박물관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목록을 명시해 전시협약서까지 체결한 상태였다.

다급해진 국립중앙박물관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최고의 전시 안전 시스템을 갖췄다며 설득에 나섰지만, 문화재청은 요지부동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포장, 운송 과정에서 전시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취하는 조건으로 문화재청에 거듭 협조를 요청했다.

여기에 문화재청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는 등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목소리로 협공에 나서자 문화재청은 그동안 취했던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결국 문화재청은 9일 반가사유상의 국외 전시를 허용하면서도 기마인물형토기와 토우장식장경호는 토기 문화재라 훼손 우려가 큰 점을 들어 반출을 끝내 허가하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전 세계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문화재의 보존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과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 어느 것이 더 우선하느냐는 판단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일각에서는 문화재청의 행보를 ‘쇄국주의’로 몰아붙이지만,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도 조각상을 비롯한 공예적 가치가 뛰어난 문화유산들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반가사유상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국가지정 문화재의 국외 나들이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한 급선무는 국가지정 문화재의 국외 반출 허가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국외 반출 허가 기준을 명문화하기 위해 외부 용역을 맡겼다고 전했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이날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 보존관리 협력에 관한 협약서’를 체결해 문화재의 보존 관리와 활용 방안을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뉴욕 전시를 기획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국외 전시 목록에 대해 사전 조율 작업을 거쳤다면 문화재청과 정면 충돌하는 볼썽사나운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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