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제국’ 한국 경제사 관통한 대하드라마 여운>

<’황금의제국’ 한국 경제사 관통한 대하드라마 여운>

입력 2013-09-18 00:00
업데이트 2013-09-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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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시청률 9.7%로 종영…박경수 작가 ‘추적자’ 이어 마니아팬 열광 이끌어

황금의 제국은 결국 깨지지 않았다. 자본과 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질서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박경수 극본, 조남국 연출)은 어둡고 우울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냉혹한 세상의 모습을 투영하며 17일 밤 비장하게 끝맺었다.

최종회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은 전국 9.7%, 수도권 11.2%. 방영 기간 평균 10% 안팎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2위에 머물렀고 대중이 이해하기에 내용이 다소 어렵다는 평을 받았지만, 이 드라마를 지켜본 고정 시청자들에게는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헌신한 배우들의 열연도 내내 호평받았다.

지난 7월 1일부터 24부작으로 방영된 이 드라마는 1990년대부터 20년간 거쳐온 한국의 경제사가 배경이다. 기존 어떤 드라마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은 경제사를 큰 줄기로 그리며 그 속에서 꿈틀대는 인간들의 욕망을 생생히 표현했다.

신도시 개발과 부동산 호황, IMF, 구조조정, 벤처 열풍과 카드 대란, 세계 금융 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재벌, 대기업 그룹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이 정도로 묵직하게 다룬 드라마는 이전에 없었다.

흔한 로맨스·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찾을 수 없는 굵직한 재미를 맛보게 해준 특별한 작품이었다. 또 극 중 세 인물 각자가 욕망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 없이 선택과 결심을 하는 순간들을 통해 시청자들 역시 함께 고민하고 판단하게 한 지성적인 드라마였다.

일부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결말이겠지만, ‘성진그룹’이라는 황금의 제국에 균열을 내고 그 제국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질서를 꾀하겠다는 주인공 ‘장태주’(고수 분)의 꿈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서민 출신인 그는 시청자들이 세 명의 주인공 중 가장 감정이입을 한 인물이지만, 박경수 작가는 그에게 ‘해피 엔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욕망의 폭주기관차가 되어 질주하며 손에 묻힌 피와 얼룩의 대가를, 그가 쓰러뜨린 사람들의 희망과 행복을 앗아간 죗값을 고스란히 벌로 받게 했다. 직접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장태주의 자살을 암시했다.

장태주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작가는 이 세계가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줬다. “내가 이겼다”고 말하는 재벌(’최동성’, 박근형 분)의 딸 ‘최서윤’(이요원 분)에게 장태주는 “당신이 이긴 게 아니다. 최동성 회장이 이긴 거다”라고 응수했다.

격동하는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일찍이 사업을 일궈 시류를 타고 남들을 짓밟으며 ‘황금의 제국’을 이룬 재벌의 철옹성이 얼마나 튼튼한지 보여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황금의 제국이 과연 사람이 살 만한 천국인지, 인간성이 말살된 지옥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의 여지를 남겼다.

손발처럼 부리던 참모 ‘박전무’까지 성진그룹의 위장거래 범죄를 대신 짊어지고 옥살이를 하러 들어가고 가족구성원 모두 저마다의 욕심 또는 멍에를 지고 뿔뿔이 흩어져 집을 떠난 뒤 대궐 같은 집의 큰 식탁에 홀로 앉아 밥을 먹는 서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회장 자리에 도전한 오빠(’최원재’, 엄효섭 분), 사촌오빠(’최민재’, 손현주 분), 남편까지 모두 제압하고 적막한 회장실에 홀로 들어온 서윤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자신의 욕심으로 딸을 성진그룹의 장남에게 시집보내고 이후 내내 딸의 불행한 삶을 본 박전무는 서윤에게 마지막 부탁으로 딸을 그 집안에서 깨끗이 내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윤에게 “당신이 내 딸이었다면 여기서 같이 데리고 나갔을 것”이라며 측은한 눈길을 건넸다.

’황금의 제국’은 지난해 ‘추적자 THE CHASER’에 이어 박경수 작가의 마니아 팬층을 더욱 두텁게 다졌다.

박 작가는 ‘추적자’에 이어 인물들 간의 구도를 탄탄하게 짜놓고 그 안의 관계를 이용해 끊임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냈다. 촌철살인의 대사들, 고전이나 우화를 인용한 주옥같은 대사들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그는 첫 단독 집필작 ‘추적자’로 대박을 내며 방송계에 존재감을 각인시킨 뒤 두 번째 작품 ‘황금의 제국’으로 송지나, 최완규, 김영현, 박상연의 계보를 이을 대하드라마 작가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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