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기힘든 ‘정서의 벽’…일드 리메이크 잇단 부진

넘기힘든 ‘정서의 벽’…일드 리메이크 잇단 부진

입력 2013-10-25 00:00
업데이트 2013-10-2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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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상 시청률 ‘그 겨울’뿐…”제작 자율성 살려 한국적 재해석 필요”

‘여왕의 교실’ 고현정
‘여왕의 교실’ 고현정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수상한 가정부’. 올해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지상파 리메이크 드라마들이다.

이들 가운데 최고 시청률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마지막 회에서 기록한 15.8%(닐슨 코리아·이하 전국 기준). 화제 몰이에는 성공했지만 20%를 넘는 시청률 ‘대박’까지는 가진 못했다.

방송가에서는 일본 원작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더라도 한국 특유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리메이크 봇물…시청률은↓ =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로 촉발된 일본 내 한류 10주년을 맞은 올해 정작 국내에서는 일본 원작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톱스타 고현정을 원톱으로 캐스팅한 MBC ‘여왕의 교실’은 방송 내내 한 자리대 시청률로 고전하다 8.2%로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앞서 전파를 탄 KBS 2TV ‘직장의 신’은 최고 시청률 14.6%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수상한 가정부’는 지난 22일 시청률 10.5%로 같은 시간대 1위를 차지했지만, 원작의 성공과 타이틀롤을 맡은 한류스타 최지우의 명성을 고려하면 아쉬운 수치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만이 유일하게 15%를 돌파한 작품으로 남았다.

한 지상파 드라마 PD는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는 처음부터 ‘대박’을 노리고 하는 경우보다 원작을 발판 삼아 ‘안전 보증수표’로 편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장기 기획이 아닌 급히 편성을 받는 경우 원작의 성공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 한·일 사회 차이가 세운 정서의 ‘벽’ =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의 공통점은 원작의 사회 비판적 시선을 그대로 가져 왔다는 점이다.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학적으로 풀어냈고, ‘여왕의 교실’과 ‘수상한 가정부’는 현대 사회의 교육과 가족 해체 문제를 각각 다뤘다.

문제는 이들 원작이 일본 사회를 바탕으로 쓰였기에 한국의 정서와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에 있다.

이제 막 반환점을 지난 SBS ‘수상한 가정부’는 이 같은 정서상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주인공 박복녀(최지우 분)의 눈을 통해 가족 해체를 고발하고 아버지와 자녀의 성장을 그린 기획 의도는 좋았지만, 아버지의 불륜 때문에 아내가 자살했다든가 고등학생 딸이 학교 선배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오해를 사 괴로워한다는 설정 등은 한국 시청자에게 공감을 사기 어렵다.

드라마는 허당 이모 우나영(심이영)과 사고뭉치 옆집 아주머니(방은희) 등의 유머 캐릭터를 투입해 이 ‘낯섦’을 희석하려했지만, 주인공과 시청자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어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파견직) 문제’라는 한·일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며 “그런데 ‘수상한 가정부’가 다루는 가족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아직 유교적 가족관의 강한 지배를 받는다. 가족 해체에 메스를 들이대는 박복녀 캐릭터가 시청자에게 어필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정서의 차이는 위의 세 작품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감정이 절제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오영(송혜교), ‘직장의 신’의 미스김(김혜수),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고현정),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 모두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인 것. 발랄한 캔디형 여주인공에 익숙한 한국 시청자에게는 생소한 부분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노희경 작가는 ‘제8회 아시아 드라마 콘퍼런스’에서 “일본은 1990년대 초 경제 불황을 겪은 후 침체된 정서의 반영으로 드라마 속 인물들도 사유적·관조적”이라며 “그러나 한국은 굉장히 진취적인 사회다. 고즈넉한 인물보다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캐릭터가 환영받는다”는 점을 짚었다.

◇ “제작 자율성 살려 시청자 눈높이 맞춰야” = 방송 관계자들은 일본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가 한국 시청자를 붙잡으려면 국내 정서를 고려한 충분한 연구와 ‘재창작’에 가까운 각색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희경 작가는 “일본 시청자는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만, 우리는 드라마를 현실로 본다. ‘욕하면서 본다’는 말이 있듯이 극 속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장면이라고 해도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올해 가장 성공을 거둔 리메이크작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노희경 작가는 원작에 뿌리내린 왜색을 걷어내고자 주인공 오영을 소도시 거주 상속녀에서 대도시에 사는 능력 있는 상속녀로 바꾸고, 원작보다 훨씬 섬세한 시각장애인 연기를 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같은 재창작에도 한계가 뒤따른다.

일본 원작자 측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원작을 따르게 하는 것은 물론, 시청률 등의 국내 반응을 제출할 것까지 왕왕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회당 40여 분, 10회짜리 일본 드라마를 한국 방송 현실에 맞게 회당 60여 분, 16회 이상으로 분량을 대폭 늘려야 하는 고충도 따른다.

’직장의 신’의 KBS미디어 유상원 PD는 “한·일 두 나라의 제작 시스템 차이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필요하다. 일본은 우리처럼 일주일에 70분짜리 드라마를 ‘생방송’처럼 찍지 않는다”면서도 “제작 자율성을 살려 리메이크를 재창작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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