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유웨이가 칭송한 철학자 전병훈은 어떻게 잊혀졌나

캉유웨이가 칭송한 철학자 전병훈은 어떻게 잊혀졌나

입력 2016-08-08 10:48
업데이트 2016-08-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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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교수, 연구서 ‘우주의 정오’에서 한국 철학계 비판

서우(曙宇) 전병훈(1857∼1927)은 내단학(內丹學)을 중심으로 유교·불교·서양철학을 망라해 융합한 사상가다. 내단학은 내적 수련으로 공행(功行)을 쌓아 몸 안에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도교의 수련법 중 하나다.

전병훈은 젊을 때 정3품 통정대부까지 지내며 유학자로 이름을 떨쳤으나 구한말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지방관으로 밀려나자 50세에 중국으로 망명했다. 우주의 시간대가 후반부로 넘어가는 ‘우주의 정오’(오회정중·午會正中)에 접어들었고 인류가 새로운 문명의 변곡점에 접근하고 있다는 그의 철학은 중국에서 꽃피웠다.

‘정신철학사’라는 이름의 학관(學館)을 설립해 운영하며 쓴 ‘도진수언’(1919), ‘정신철학통편’(1920) 등의 저서에 전병훈의 사상이 집약됐다. 놀랍게도 캉유웨이(康有爲)나 옌푸(嚴復) 등 당대 중국 최고 지식인들의 극찬이 ‘정신철학통편’에 실려 있다.

캉유웨이는 ‘정신철학통편’의 제호를 직접 쓴 뒤 “지금 정치가 혼란하고 물질주의가 조악한 가운데, 존귀한 논의의 정미함을 얻었다. 참으로 빈 골짜기에 울리는 사람 발자국 소리 같다. 공경해 우러르길 그칠 수 없다”고 서평을 남겼다.

그러나 국내 철학계에서는 ‘근대화 시기 서양철학을 처음 접한 학자’ 정도로 두세 차례 언급됐을 뿐 100년 가까이 관심 밖이었다. 김성환 군산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전병훈 사상 연구서 ‘우주의 정오’(소나무)에서 한국 철학계의 편향되고 빈곤한 연구 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도교를 표방하고 동서고금 철학을 통합하려는 모험을 벌인 게 전병훈이 망각된 원인이라고 본다. 한국철학 연구라고 해봐야 유교가 3분의2 정도를 차지하고 도교 연구자는 거의 없다. 노·장자 등의 도가는 철학이지만 도교는 종교라는 엄격한 이분법도 작용했다. 그의 철학이 실로 다양한 사상을 다루지만 후대 학자들은 전공주의의 장벽에 가로막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기존 지식·이론의 권위에 기대는 데 익숙하고 지적 재창조 작업에는 인색한 학계의 관성적 연구도 한몫 했다. 한국에 드문 ‘지적 재창조형’ 사상가인 전병훈은 이런 관성에 의해 밀려났다. 게다가 한국 강단 철학이 시작된 경성제국대학에서는 국학 담론이 허용되지 않았고 이런 학풍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한국의 독창적 철학은 유영모(1890∼1981)와 함석헌(1901∼1989)의 ‘씨알 사상’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두 사람이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 때부터 한국의 대표 사상가로 부각됐다며 이는 오히려 한국철학의 빈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세계철학자대회를 비유럽 문화권 최초로 열게 된 의미에 걸맞은 독자적 사유가 없어 ‘씨알 사상’을 급하게 내세웠다는 주장이다.

그는 “몇몇 철학계 원로들이 궁여지책으로 부랴부랴 20세기 한국의 대표 사상가들을 ‘발명’했다”며 “창조적 담론을 생산하지 못한 아카데미 철학의 척박한 풍토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병훈이 근대 이후를 전망하고 준비한 미래사상가였다며 원효·최치원과 나란히 위대한 한국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전병훈의 철학적 모험은 낯선 것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을 넘어서는 사상적 자기극복의 연속이었다. 동·서양 문화와 철학에 대한 담론이 고조되던 중국 지성계의 논의와 지식을 수용하면서, 전통 지식인의 좁은 안목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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