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삼국지 애독자 정조는 잡서로 등한시

영조는 삼국지 애독자 정조는 잡서로 등한시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6-10-11 17:40
업데이트 2016-10-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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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 조선 임금과 베스트셀러 ‘삼국지’에 얽힌 일화 소개

조선의 임금들은 당대 최고 베스트셀러였던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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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서진의 진수가 지은 정사인 ‘삼국지’가 조조의 위를 정통으로 세워 기술한 것에 비해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는 한(漢) 왕실의 후예인 유비가 세운 촉한을 정통으로 세워 그의 의형제 관우와 장비의 드라마틱한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조선 전기에 수입돼 임진왜란 이후 큰 인기를 누려 임금부터 일반 부녀자까지 애독자였다.

11일 한국고전번역원이 펴낸 계간 ‘고전사계’에 따르면 조선 문헌에서 삼국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선조실록 2년(1569) 6월 20일 기사다. 당시 18세였던 선조가 신하들을 인견할 때 삼국지연의에 있는 ‘장비의 고함에 만군이 달아났다’는 말을 우연찮게 했다. 그러자 대유학자인 기대승이 선조에게 “삼국지는 전등신화나 태평광기처럼 사람의 마음을 잘못 인도하는 책이니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조는 기대승의 간언에 묵묵부답이었다.

조선 왕 중에서 삼국지 애독자는 영조였다. 영조는 삼국지와 서유기, 수호지 등 중국의 3대 기서를 즐겨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삼국지를 가장 많이 읽었다.

승정원일기의 영조 12년 6월 23일 기사를 보면 영조는 조조를 강하게 비난한다. 경희궁 홍정당에서 있었던 영조와 신하들의 대화. 영조가 “조조의 형언할 수 없는 악행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 것에 있었다”고 말한다.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 세상의 삼척동자도 모두 조조를 쏘아 죽이고 싶어 하는데, 이것은 삼국지가 우리나라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라고 아뢴다.

조선에서 조조는 시대의 영웅이 아니라 한나라를 찬탈한 간신이자 역적이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영조는 사도세자를 훈계할 때도 삼국지를 언급하며 백성들이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안다고 말한다.

영조와 달리 정조는 삼국지를 잡서로 여겨 좋아하지 않았다. 정조 스스로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정통 고문(古文)체를 중시하고 패관소품(稗官小品)체를 싫어한 그는 “한가할 때에 내가 읽는 책은 성인과 현인들의 경전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승정원일기 정조 23년 5월 5일). 정조는 삼국지를 사람의 마음을 흐리는 잡서의 하나로 봤다.

조선 후기에는 신하가 왕에게 삼국지를 읽어 보라고 권하는 경우도 있었다. 승정원일기 고종 13년 3월 25일 기사를 보면 경연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고종에게 김홍집의 부친이었던 김영작은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한다. 이처럼 조선 백성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삼국지는 임금마다 시대마다 큰 시각 차이를 드러내는 책이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6-10-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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