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들’ 흥행으로 본 창작뮤지컬의 명암

‘그날들’ 흥행으로 본 창작뮤지컬의 명암

입력 2013-06-17 00:00
업데이트 201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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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의 힘… 심해진 양극화의 독

지난 9일 서울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에서는 유준상과 지창욱 등 배우들이 난데없이 웃통을 벗고 기왓장을 격파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고 김광석의 노래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 뮤지컬 ‘그날들’. 공연 두달여 만에 40억원의 제작비를 회수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제공
고 김광석의 노래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 뮤지컬 ‘그날들’. 공연 두달여 만에 40억원의 제작비를 회수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제공
창작뮤지컬 ‘그날들’(제작비 40억원)이 2개월간 흥행가도를 달리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하자 배우들이 공약을 이행한 것. 작품성 있는 창작뮤지컬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소극장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뮤지컬로, 게다가 초연으로 이 같은 흥행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날들’ 외에도 ‘살짜기 옵서예’,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 굵직한 창작뮤지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창작뮤지컬의 ‘반격’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에서는 투자자를 찾지 못하거나 대관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살아남기 위해 드라마나 영화 등 검증된 소재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여전하다.

올 상반기 창작뮤지컬 중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그날들’이다. ‘서른 즈음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고 김광석의 명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유준상, 오만석 등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유료 객석점유율 80%를 달성했다. 제7회 더 뮤지컬 어워드에서 3관왕에 오르는 등 평단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지난 1~3월 충무아트홀 초연 당시 유료 객석점유율 95%를 기록한 뒤 5월 대학로에 진출했다. 한국전쟁 당시의 무인도를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 6명을 내세워 2030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1966년 초연돼 대한민국 1호 뮤지컬이 된 ‘살짜기 옵서예’는 지난 1월 티켓 오픈과 동시에 예매사이트에서 예매율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창작뮤지컬의 메뉴는 점점 더 풍성해지고 있다. ‘김종욱 찾기’, ‘해를 품은 달’ 등은 ‘원 소스 멀티 유스’ 작품으로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그날들’과 ‘광화문 연가’는 각각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과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를 기반으로 부모세대에게는 향수를, 자녀세대에게는 신선한 감동을 준다. ‘날아라 박씨’, ‘살짜기 옵서예’와 같이 고전소설을 기반으로 하거나 ‘글루미 데이’ ‘아리랑-경성26년’ 등 역사 속 이야기를 무대에 구현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트레이스유’는 록 콘서트와 드라마의 결합,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반주나 소품, 무대장치 등 모든 것을 배우들의 움직임과 아카펠라로 구현하는 특이한 형식으로 주목받는다.

그런 가운데 ‘사랑은 비를 타고’가 18년째 공연되는 등 장수 창작뮤지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영화 ‘써니’, ‘마당을 나온 암탉’,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류 뮤지컬의 열풍에도 창작뮤지컬들이 가세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7년 ‘사랑은 비를 타고’를 시작으로 ‘빨래’, ‘광화문 연가’ 등 한국 창작뮤지컬들이 연이어 공연되고 있다. ‘김종욱 찾기’는 6월 중국에서 공연돼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넘는 한국 창작뮤지컬로 기록됐다. 아이돌 스타를 내세우지 않아도 한국적 색채와 스토리의 힘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창작뮤지컬 제작자들은 마냥 웃지만은 못하고 있다. 창작뮤지컬의 연이은 흥행은 반갑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연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조한성 스토리피 대표는 “문화 소비가 위축되면서 관객들은 창작뮤지컬보다는 검증된 라이선스 뮤지컬을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면서 “소극장 공연은 그나마 활발해졌지만 대극장 공연은 극히 일부에 그치는 등 여전히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고 말했다.

완성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엎어지는’ 사례도 적잖다.

지난 13일 개막할 예정이던 ‘왕의 남자’는 투자가 원활하지 못해 대관이 취소됐고 결국 올 가을로 미뤄졌다. 앞서 ‘그날들’은 공연장 시공사와 건물주의 이권다툼 탓에 공연이 무산될 뻔했고, ‘완득이’도 제작사의 사정으로 시즌2 개막이 연기됐다.

‘그날들’, ‘해품달’ 등을 제작한 손상원 이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투자와 극장 대관, 배우 섭외 등의 제작환경은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해 여전히 열악하다”면서 “때문에 제작자들도 흥행한 영화나 드라마 등 검증된 작품을 찾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3-06-1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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