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으로… 도마로… 사라질 뻔한 명품 목판화

땔감으로… 도마로… 사라질 뻔한 명품 목판화

입력 2013-06-25 00:00
업데이트 201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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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고판화박물관 ‘아시아 고판화 30선’ 공개

근대 이전 한·중·일의 동북아 3국에서 사랑받던 목판화는 전란을 거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중국에선 목판(木板)을 뜯어 닭장을 만들거나 집을 짓는 데 사용했고, 일본에선 화로나 분첩을 만들었다. 한국에선 불쏘시개로 써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

강원 원주시 치악산 자락의 고판화박물관에 가면 아시아 각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담은 목판(화)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중국의 국보급 판화인 ‘불정심다라니경’의 번각본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제공
강원 원주시 치악산 자락의 고판화박물관에 가면 아시아 각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담은 목판(화)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중국의 국보급 판화인 ‘불정심다라니경’의 번각본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제공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진 18세기 조선의 팔도지도 판화.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진 18세기 조선의 팔도지도 판화.


일본의 대표 판화인 ‘북악 36경’.
일본의 대표 판화인 ‘북악 36경’.


조선시대의 가장 오래된 판화 원판으로 알려진 ‘오륜행실도’ 목판.
조선시대의 가장 오래된 판화 원판으로 알려진 ‘오륜행실도’ 목판.


티베트·몽골의 대표 판화유물인 타르초 목판.
티베트·몽골의 대표 판화유물인 타르초 목판.


땔감으로, 도마로 사라질 뻔한 목판 가운데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한 것들은 대부분 국외로 반출되거나 무지한 소장자의 손에 들어가 창고에 갇혔다. 18년간 목판과 목판화를 모아 온 한선학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장은 “199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고판화의 가치는 여전히 바닥을 기었다”면서 “무시 받던 목판(화)의 예술적 가치가 되살아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는 8월 30일까지 강원 원주시 치악산의 고판화박물관에서 열리는 개관 10주년 기념 ‘아시아 고판화 명품 30선’에선 4000여점의 목판과 목판화 가운데 가려 뽑은 수집품 30점이 공개된다.

국내 유물 중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불설아미타경’을 비롯해 조선시대의 가장 오래된 판화 원판인 ‘오륜행실도’ 목판,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진 18세기 조선팔도지도 등이 포함됐다. 조선 선비들이 시나 편지를 쓰기 위해 만든 ‘시전지’ 목판도 감상할 수 있다. 선비들은 지인으로부터 받은 시전지를 고풍스러운 벽장에 붙여 멋을 내곤 했다. 오륜행실도의 경우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4각 화로로 만들어 훼손한 상태다. 원형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평가받는다.

중국 고판화 가운데는 청나라 채색판화인 ‘미인도’가 손꼽힌다. 청나라 중기, 최대의 판화제작소인 천진양류청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일본의 우키요에에 영향을 끼쳤다. 중국 학자들이 국보급으로 평가하는 ‘불정심다라니경’의 번각본을 비롯해 명나라 ‘고씨화보’, 청나라 ‘개자원’ 등 당대에 명성을 떨쳤던 판화 화보도 나왔다.

원래 중국 저장성 박물관의 소장품인 불정심다라니경은 훼손 정도가 심해 전체적인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고판화박물관이 보관 중인 번각본은 글의 앞장 5장만 분실됐을 뿐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한 관장은 “남송과 고려, 조선 초기까지 이어지는 긴밀한 문화교류를 엿볼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신라의 자장 율사가 신인을 만났다는 오대산을 묘사한 ‘오대산성경전도’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최근까지 자신의 유물이라고 다퉜으나 지난해 중국의 유물로 판정받은 작품이다.

일본 유물로는 ‘호코사이 북악 36경’ 등 우키요에 회화가 소개된다. 우키요에란 일본 무로마치부터 에도시대 사이에 서민생활을 그린 풍속화로 대부분 목판화로 제작됐다. 고흐 등 서양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티베트·몽골 유물로는 ‘타르초 목판’과 불화 판화 등이 나왔다. 타르초는 기도를 써놓은 깃발로 이 지역의 독특한 신앙 양식으로 알려졌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6-2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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