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수술 후 인생 2막 연 소리꾼 장사익
‘어머니, 꽃구경 가요/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어머니 좋아라고/아들 등에 업혔네/마을을 지나고/들을 지나고/산자락에 휘감겨/숲길이 멀어지자/아이구머니나/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소리꾼 장사익이 지난달 30일 서울 세검정로의 자택 정원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꽃구경’을 부르고 있다. 멀리 뒤로 보이는 인왕산이 장사익의 절창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장사익이 성대 수술 후 제2의 노래 인생을 시작한다. 10월 5~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콘서트 ‘꽃인 듯 눈물인 듯’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그는 “수술 후 깊이가 달라졌다”고 했다. “이젠 노래 속을 알고 부르게 된 것 같다고 할까요. 예전엔 멋모르고 노래를 했는데 지금은 가사 하나하나를 더 깊이 생각하고 음미하고 의미를 두면서 부릅니다.”
2~3년 전부터 무대에서 노래 부를 때 물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보통 네다섯 곡에 한 번씩 목을 적셨는데 두세 곡으로 줄더니 지난해엔 한 곡당 물을 마셔야 했다. 작년 가을부턴 목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모래알 섞인 듯 서걱거렸고 고음을 소화하기도 어려웠다. 지난해 연말 세종문화회관의 제야공연 땐 정말 죽을힘을 다해 노랠 불렀다. 공연 며칠 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담당의사가 성대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혹이 있어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공포였습니다. 사람들이 목소리 좋다고 칭찬하는데 그 목소리를 잃는다고 생각하니…. 노래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젊었을 적 무역회사, 가구점, 카센터 등 15곳에서 일했는데 그 일들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노래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저세상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노래를 불렀던 시간들은 제 인생의 꽃이었고, 노래를 잃고 지낸 몇 개월은 눈물이었습니다.”
지난 2월 서울대병원에서 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2주간 ‘무언’(無言) 생활이 이어졌다. “말을 계속 해오다 갑자기 못하게 되니 세상과 격리돼 외톨이가 됐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난생처음 멈춰 서서 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돈 주고도 사지 못할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술 후 2주에 한 번씩 음성 치료를 받았다. 조금씩 소리가 되살아났다. 기적이었다. 지난 6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가요무대에서 수술 후 처음으로 노래 세 곡을 불렀다. “높은 소리가 약간 불안했었는데, 관객들께서 열렬히 환호해 주시더군요.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웠던지….” 요즘은 공연을 앞두고 하루 1시간 이상 발성과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공연 제목 ‘꽃인 듯 눈물인 듯’은 시인 김춘수의 ‘서풍부’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연 제목을 정하는 게 참 힘들어요. 재작년 20주년 기념 콘서트는 ‘찔레꽃’이었어요. 마흔여섯 늦은 나이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첫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자는 의미에서 제일 먼저 불렀던 ‘찔레꽃’을 택했습니다. 이번엔 노래를 잃고, 노래를 다시 찾은 제 경험을 살려 정했습니다.”
공연은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시의 향연이다. 김춘수 ‘서풍부’, 허영자 ‘감’, 마종기 ‘상처’ 등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 이어진다. 2부는 ‘동백아가씨’, ‘님은 먼 곳에’, ‘봄날은 간다’ 등 장사익의 애창곡들로 꾸며진다. “심란했던 사람들도 한바탕 울고 웃고 나면 심신이 깨끗해집니다. 제 노래는 씻김굿처럼 씻어 줍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마음속 그림자가 사라지고 하얀 백지가 돼 삶의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는 힘을 얻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3만~12만원. (02)396-0514.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6-09-02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