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패륜적 살인·양심적 병역거부… 모욕당한 삶들, 그 섬뜩한 초상

용산참사·패륜적 살인·양심적 병역거부… 모욕당한 삶들, 그 섬뜩한 초상

입력 2013-02-20 00:00
업데이트 2013-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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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7번째 소설집 ‘정결한 집’

뒤틀린 결혼생활의 상처를 보상받으려 자식에게 병적으로 매달리던 어머니. 전교 1등을 하라며 피칠갑이 되도록 고교생 아들에게 골프채를 휘두르던 어머니의 시신은 수개월 뒤 별거 중인 아버지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던 아들이 어머니에게 조작한 성적표를 내밀다 들통날 것을 우려해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시신을 둔 방의 문틈은 공업용 본드로 봉인됐고, 아들은 수능까지 치른 채 반년 넘게 시체와 동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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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일곱 권의 소설집을 펴낸 소설가 정찬. 동의대 문창과에서 소설을 가르치는 작가는 단편소설집 ‘정결한 집’에서 자유와 운명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군상을 담아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24년간 일곱 권의 소설집을 펴낸 소설가 정찬. 동의대 문창과에서 소설을 가르치는 작가는 단편소설집 ‘정결한 집’에서 자유와 운명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군상을 담아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2011년 11월, 세상을 뒤흔든 이 사건은 소설가 정찬의 단편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 펴냄)의 표제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수상작가인 정찬이 내놓은 일곱 번째 소설집에는 ‘세이렌의 노래’ ‘흔들의자’ 등 여덟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표제작 ‘정결한 집’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장치를 통해 소년과 어머니의 마음 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작가는 에두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돌직구’처럼 엇갈린 인간 관계의 비극을 살핀다.

칼꽂이에 꽂힌 네 개의 칼을 내려다보는 소년의 시선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는 아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머니는 소년을 집어삼킨 거대한 괴물인가 하면,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이기도 했다.’(19쪽)

현실과 몽상이 만나고 의지와 운명이 엇갈린다. 여자친구 명희가 작은 새처럼 허공으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 아들은 처음으로 자정을 넘겨 집에 돌아온다. 어머니에게 맞는 것보다 버림받는 게 더 두려웠던 아들은 새벽빛이 창을 통해 비스듬히 스며들던 때, 윤리나 패륜이란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른다.

30년 경력의 작가는 신문 사회면의 한 켠을 짤막하게 장식했을, 무미건조한 사건들에서 하늘을 활공하는 새처럼 유려하고 매끄러운 몸짓으로 탄탄한 서술을 창조해 낸다. 어쩌면 누락됐을지도 모를 사소한 팩트까지 챙겨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다.

작가는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사태,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사건들에도 소설로서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트로이의 목마 속에서 깨어난 오디세우스가 개발과 발전의 미명 아래 사람들이 붙타 죽은 용산참사의 현장을 낯선 시선으로 내려다보거나(세이렌의 노래), 타워팰리스 66층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해고 노동자인 남편과 어지럼증을 함께 겪는(흔들의자) 식이다.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청년의 목소리도 들린다(녹슨 자전거).

‘오랫동안 모욕당한 사람들만이 갖는 상처’는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주제다. ‘세이렌의 노래’에선 망루보다 높은 하늘에서 참사를 지켜보고 기록하는 오디세우스의 입을 빌려 망루에 접근하는 경찰 헬리콥터를 현대판 트로이의 목마로 규정한다. 농성자들은 노래로 사람을 유혹해 죽인다는 괴물, ‘세이렌’일 따름이다.

작가는 왜 이런 소설들을 썼을까. 정찬은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문학이란 삶과 연관된 표현의 형식인데 어느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워낙 충격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들인 만큼 파헤쳐보고 싶었다”면서 “사건 자체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소설이란 고유의 형식 속에 용해시켜 나름의 미학적 방식으로 소화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또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모욕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이라고 단언했다. ‘사랑이 꿈과 기적 사이의 어떤 것이라면, 모욕은 절망과 죽음 사이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정치,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존까지 무너뜨린 사람들이 많다”며 “자본이 권력을 뛰어넘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2-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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