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훈 장편 ‘망치’… 아버지 죽음이 남긴 잔혹한 가족사의 치유
“무척 작고 보잘 것 없는 몸이었지요. 그런 작은 몸 안에 저런 쇠막대를 품고 살아오시다니, ‘얼마나 무거웠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에 담을 수 있었다면 그랬겠지만, 소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5년차 시인으로 첫 장편소설 ‘망치’를 내놓은 원재훈 작가. 화장된 아버지 무릎뼈에서 나온 쇠막대 일곱 개를 보고 느낀 회한이 모티브가 됐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황해도 개성 출신인 아버지는 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조각난 뼈들을 잇기 위해 의료용 쇠막대를 박고 평생을 살았다. 회한이 물밀듯 몰려왔다. 한평생 인생이란 짐을 허리에 지고 터벅터벅 걸어왔을 아버지의 삶이 떠올라서다. 쇠막대 7개는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 쉰 고개를 넘었지만 장편소설을 쓰기는 처음이다. 작가는 “2003년 마지막 시집 ‘딸기’를 출간한 뒤 도무지 시가 써지지 않았다. 6년 전부터 가끔씩 이런저런 소설을 썼지만 문학을 접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고 말했다.
2년여동안 구상하고 다시 1년여간 집필했다. 지난달 출간된 소설 ‘망치’(작가세계 펴냄)는 이런 담금질을 거쳤다.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이란 부제가 붙었다.
1, 3부는 아들이 떠올린 아버지 이야기다. 화자 상원은 출가한 스님이다. 두 집 살림을 꾸린 아버지 탓에 생업전선으로 등떠밀린 어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자랐다. 상원은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삶에 회의를 느껴 출가한다. 이때 들려온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머리에는 망치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화장터에서 아버지의 다리뼈에 박힌 쇠막대를 발견한다.
2부의 화자는 상원의 어머니. 잘생긴 은행원이었던 남편을 의지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뒤로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노쇠한 남편은 병석에 누워 돌아왔다. 어느 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뜬 작은 처에게 망가진 휴대전화에 대고 “만나자”고 속삭이는 소릴 듣고 눈이 뒤집힌다. 망치로 휴대전화를 부수다보니 남편의 숨도 멎어 있었다. 10년 뒤, 상원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소에서 이복동생 상민과 재회한다. 잔혹했던 가족사도 치유받는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전적 소설은 아니다”면서 “독자들이 ‘스스로 힐링이 된다’고 말 할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4-10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