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부당 해고… 이익에 눈먼 기업들의 속살

착취·부당 해고… 이익에 눈먼 기업들의 속살

입력 2013-08-17 00:00
업데이트 2013-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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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기업: 일본을 먹어 치우는 괴물/곤노 하루키 지음/이용택 옮김/레디셋고/272쪽/1만 5000원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가 차단벽을 뚫고 하루 300t씩 바다로 흘러가는데도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도쿄전력. 이 회사는 일본의 시민단체인 ‘POSSE’가 선정한 ‘제1회 블랙기업 대상’ 수상 기업이다. 이밖에 시민상에는 와타미 푸드서비스, 특별상에는 웨더뉴스, ‘있을 수 없어’ 상에는 젠쇼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법적인 고용 형태로 청년들을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리는 악덕기업이란 사실이다. 정규 직원을 대량 고용해 장시간 근무와 부조리한 명령으로 혹사시킨 뒤 도태된 사람들을 퇴사시키는 수법을 쓴다. 교묘한 직장내 괴롭힘과 폭언으로 스스로 나가도록 만드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시달리던 청년 직원 가운데 일부는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법학도 출신인 저자는 POSSE에서 7년간 일하며 1500여건의 노동 상담 사례를 분석, 블랙기업을 적발하는 작업을 해왔다. 대량 모집→선별→쓰고 버리기가 바로 블랙기업의 전형적인 고용 패턴이다.

요즘 일본에선 블랙기업이 화두다. 예전에는 폭력조직과 결탁한 기업이란 뜻이었지만 최근 쓰임새가 달라졌다. 비합리적인 노동을 젊은 직원에게 조직적으로 강요하는 기업을 일컫는다.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일본 청년의 노동문제는 ‘프리터’(파트타임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젊은이)나 ‘니트족’(취업 의지가 없는 청년 무직자)에 그쳤다. 청년층의 의지 결여나 의존증이 문제일 뿐 기업의 문제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최근 일본 사회에선 청년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2009년 정보통신(IT)기업의 노동 착취를 그린 영화 ‘블랙기업에 다니는데, 이제 나는 한계인 것 같아’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부터다. 2010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한 번 쓰고 버려진다”며 상담실을 찾는 신입사원들이 급증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도쿄의 중견 IT기업인 Y사에 취업했다가 퇴직을 강요당한 신입사원들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연매출 90억엔(약 1027억원)인 이 기업은 신입사원을 하청직원으로 대기업에 파견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사장과 소수의 임원, 그 밑의 영업사원이 900명 가까운 하청직원을 관리한다. 직원들은 꾸준히 이익을 내지 못하면 상사에게 불려가 ‘카운슬링’이란 이름으로 하루 2시간씩 시달렸다. 상담실 안에선 “넌 쓸모없어”,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낫다”는 등 폭언이 난무했다.

중견 의류업체인 X사에선 낮밤이 따로 없는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신입사원 다수가 우울증을 앓았다. 하지만 회사는 곧바로 퇴직을 허용하지 않았다. 휴직을 강요해 병이 나은 다음 그만두라고 강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밀려난 신입사원 대다수는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최면에 빠져 있었다.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라며 자기 부정을 강요당한 카운슬링의 효과 때문이다. 저자는 정규직 청년들은 비정규직과 달리 자신들의 문제를 내놓고 말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쉽게 블랙기업의 표적이 되는 이유다. NHK는 2005년 ‘프리터 표류’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정규직(프리터) 청년 노동자들이 하청직원으로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노숙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고발했다. 이후 청년들은 목숨을 내놓고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도 적지 않다. “참고 견뎌야만 성공한다”는 사회적 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기업 문화를 다시 돌아봐야 할 때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8-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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