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장미꽃밭에 있는 똥” 천진난만 동심은 사치였다

“우린 장미꽃밭에 있는 똥” 천진난만 동심은 사치였다

입력 2013-08-31 00:00
업데이트 2013-08-31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지음/강수정 옮김/반비 펴냄 388쪽/1만 6000원

“몇 주 전 압둘은 이곳에서 한 소년이 플라스틱을 분쇄기에 넣다가 손이 잘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손목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밥벌이 능력도 잘려 나갔건만, 공장 주인에게 빌기 시작했다. ‘사아브, 죄송합니다. 이걸 신고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50쪽)

안나와디의 아이들. 돈이 없어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데다 어린 시절부터 생계유지와 부양의 책임까지 떠맡아야 한다. 반비 제공
안나와디의 아이들. 돈이 없어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데다 어린 시절부터 생계유지와 부양의 책임까지 떠맡아야 한다.
반비 제공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의 판잣집과 아이들. 인도 경제 발전의 조력자였던 하층 노동자들은 발전의 결실을 나누지 못한 채 열악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비 제공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의 판잣집과 아이들. 인도 경제 발전의 조력자였던 하층 노동자들은 발전의 결실을 나누지 못한 채 열악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비 제공
그곳에는 없었다. 흔히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에서 엿볼 수 있던 인간애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동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40여년간 극빈자를 돌봐온 마더 테레사의 숭고한 사랑도 마찬가지. ‘에이즈 고아’를 앞세워 기부받은 음식과 옷가지를 빼돌린 탐욕스러운 고아원 수녀 원장이 있을 따름이다. 그는 해외에서 취재진이 올 때마다 아이들 앞에서 다정한 미소를 짓기에 바빴다. 이웃의 고통을 재물 삼아 주린 배를 채우던 촌장은 인도 정부의 자활 정책을 지지했다. 그는 정부 자활금을 빼돌려 먹고살았다. 자활금 지원 대상으로 지목받은 빈민촌 아낙들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거짓 미소만 지어 댔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인도 최대 도시인 뭄바이 서쪽 외곽에 자리한 빈민촌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팩트’를 핀셋으로 들어올리듯 미세하고 정교하게 담아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이용해 극적인 ‘르포르타주’(기록문학)의 색깔을 띠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어떻게 안나와디의 빈민들을 위태롭게 만드는지 통렬하게 고발한다. 비정규직 문제와 무한 경쟁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받은 20여년 경력의 기자. 200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3년여간 안나와디에 머물며 이곳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안나와디’는 안나들의 땅이란 뜻이다. 인도 남부 타밀 사람들이 형을 높여 부르는 호칭인 ‘안나’를 합성해 만든 조어다. 정부가 국제공항 활주로 보수를 위해 트럭에 실어 온 타밀 노동자들은 1991년 공사가 마무리되자 딱히 새롭게 할 일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뱀이 사는 습지를 메워 거주지로 삼았다.

안나와디는 밤마다 5개의 초특급 호텔이 쏟아내는 휘황찬란한 불빛에 둘러싸인다. 주민들은 “주변은 온통 장미꽃 밭이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똥 같은 존재”라고 일갈할 뿐이다.

더러운 오수 덩어리로 에워싸인 빈민촌에는 335채의 판잣집에 3000여명의 주민이 몰려 산다. 하루 800t의 쓰레기를 뒤져 먹고사는 넝마주이가 대부분이다. 방방곡곡에서 흘러온 이주민들은 끊임없이 들고나며 토착민과 갈등을 만든다.

이곳의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죽어 가는 타인에게 무심한 것은 윤회에 대한 믿음 때문은 아니다. 고통에 공감할 여지가 없을 만큼 참혹한 현실 탓이다. 부정부패에 관대한 것도 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도시에서 그나마 가난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존 도구이다.

책은 안나와디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을 단초로 서술된다.

외다리 여자 파티마는 옆집과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분신자살한다. 파티마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옆집 소년 압둘과 그의 누나, 아버지를 가해자로 지목한다. 어머니 제루니사는 감옥에 갇힌 가족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힘겨운 투쟁에 나선다. 부패한 경찰과 의사는 뒷돈 챙기기에 바쁘고, 누명을 벗겨 줄 재판은 기약 없이 미뤄진다. 쓰레기 재활용 사업으로 조만간 빈민촌을 벗어나려던 가족의 꿈도 무참히 깨진다.

저자는 파티마의 분신을 전후한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해 168명과 반복적으로 인터뷰하고, 병원·법원·경찰 등을 돌며 3000여건의 공공 기록을 확보했다.

책은 압둘 가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신분 상승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빈민촌의 유일한 여대생 만주와 가족에게 뭇매를 맞으며 살다가 쥐약을 삼키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 미나,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돈벌이를 하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칼루 등 빈민촌 군상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들의 삶은 2008년 전 세계를 덮친 불황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녁거리로 쥐와 개구리를 잡아 튀겨 먹고 웅덩이 근처의 풀을 뜯으면서 부끄러워했던 주민들은 신분 상승의 희망을 포기한다. 그들은 다시 쥐를 잡아먹는 생활에 익숙해지려 한다. 책은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깊이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8-31 18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