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는 달리라고 있는 것”

“엉덩이는 달리라고 있는 것”

입력 2013-08-31 00:00
업데이트 2013-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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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달린다] 마크 롤랜즈 지음/강수희 옮김 추수밭/276쪽/1만 5000원

달리기에 관한 책들은 많다. 국내에 소개된 책만 해도 2000년대 초반 마라톤 열풍을 가열시킨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를 비롯해 조지 시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 베른트 하인리히의 ‘우리는 왜 달리는가’ 등이 대표적이다. 마라톤광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번역돼 있다.

때문에 제목만으로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달리기가 대체 뭐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토록 다양한 담론을 생산해 내는 걸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철학자가 달린다’고 해서 뭐 그리 다를까 싶다. 하지만 저자가 누군지 알고 나면 다시 책을 집어들게 된다.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라는 부제를 단 ‘철학자와 늑대’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마크 롤랜즈 미국 마이애미대 철학과 교수가 주인공이다. 실제 늑대와 지낸 경험담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본질,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통찰을 유머와 감동의 코드로 엮어낸 작가인 만큼 달리기라는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왜 달리는가. 달리기에 관한 모든 책들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제각각의 답이다. 이 책 또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늑대 브레닌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살던 괴짜 청년에서 어느덧 두 아이를 둔 중년 철학자가 된 저자는 2011년 첫 마라톤에 도전한다. 계기는 ‘중년의 위기’였다. 허물어져가는 육체를 보면서 인생의 참 의미를 찾기 위해 마라톤 출발선에 선 그는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달리기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릴 적 고향 웨일스(영국)에서 하루 종일 개와 달리던 소년, 브레닌과 함께 프랑스 해변을 달리던 청년, 그리고 이제는 개 휴고를 데리고 마이애미의 교외를 달리는 중년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지면서 달리기의 가치를 진지하게 사유한다.

다시 한번, 왜 달리는가. 철학자는 답한다. 어떤 목적, 어떤 의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달리기 그 자체가 지닌 본질적 가치를 위해서라고. 목적과 의미가 멈춘 곳에서 달리기 고유의 리듬, 심장 박동소리와 하나가 될 때 온몸으로 전해지는 자유와 환희를 느껴 보라고 권한다. 플라톤, 사르트르, 하이데거 같은 사상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집착하는 오해는 엉덩이가 앉아 있으라고 진화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엉덩이는 달리라고 있는 것 같다”처럼 곳곳에 포진한 유머 덕에 딱딱하지 않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2013-08-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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