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차별·분쟁… 무너지지 않는 장벽들

불균형·차별·분쟁… 무너지지 않는 장벽들

입력 2013-12-07 00:00
업데이트 2013-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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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클로드 케텔 지음/권지현 옮김/명랑한지성/344쪽/1만 7000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폭력적인 20세기와 냉전의 시대는 가고, 더불어 여러 정치적 장벽도 무너져 내릴 듯 보였다. 한데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인종·종교·영토 분쟁으로 여전히 새 장벽들을 쌓고 있다. 남북한을 가르는 삼팔선,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걸쳐 있는 키프로스의 그린라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분리 장벽 등이 건재하고, 불법 이민 방지를 위해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부시 장벽이 세워지는 등 바벨탑 같은 장벽들이 세계 도처에서 솟구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르는 게이티드 커뮤니티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장벽이 국가와 국민 보호라는 외부적 분리 기능뿐 아니라, 공동체를 가르는 내부적 분리의 악역까지 맡고 있는 셈이다.

‘장벽’은 이처럼 인류가 그간 세운 장벽을 프레임 삼아 역사를 재조명한 책이다. 초세계화, 국경 없는 세계를 외치면서도 정작 장벽은 더욱 높고 견고해지는 역설의 원인을 짚고 있다.

장벽은 돌무더기를 쌓은 선사시대부터 인류 역사와 함께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로마 리메스 황제의 장벽 등이 전형적인 예다. 요새나 성곽 같은 단순한 방어벽은 이후 ‘정치적 의미’가 있는 장벽들로 진화해 나간다. 저자는 베를린 장벽을 정치적 장벽의 대명사로 꼽았다. 장벽은 권위를 상징하거나 제어하고, 경계를 만들어 배제와 금지를 되풀이하는 도구로 작동했다.

그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끝없이 장벽을 넘어 다른 세상으로의 탈출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됐다. 저자는 이처럼 장벽들이 얼마나 무자비한 군사적 장치들로 무장하고 있었는지를 상세히 묘사해 당대의 잔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결론은 장벽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장벽 자체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외려 게이티드 커뮤니티처럼 심각한 사회 불균형, 사회 불만의 첨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장벽이 세워진 근원적인 이유를 통찰할 수 있어야 장벽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의 장벽들은 부의 불평등과 편향 등 불균형이 낳은 결과물이다. 결국 장벽의 높이는 내 것을 네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두려움의 크기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이게 해소되려면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위해 제 살 깎아 희생해야 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 깊은 회의를 갖는 동시에 부자 나라들이 세계 질서를 보다 평등한 방향으로 재편할 의지를 가져 주길 우회적으로 당부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3-12-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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