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들 편지 통해 본 삶과 속내

조선 선비들 편지 통해 본 삶과 속내

홍지민 기자
홍지민 기자
입력 2016-12-23 17:46
업데이트 2016-12-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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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문장/석한남 지음/학고재/268쪽/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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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억지로 같도록 만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남계가 저와 같을 수 없듯이 저 역시 남계와 같을 수 없습니다…비록 지금은 생각이 같지 않다 해도 어떻게 서로 의심하며 멀리하겠습니까?” 조선시대 대학자인 윤증(1629~1714)이 조카의 부음을 접하고 남긴 편지의 일부 내용이다. 자기의 제사상 크기가 넉 자(약 1.2m)를 넘지 못하도록 유언했을 정도로 평생 청빈하게 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부친의 친구이자 자신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이 부친의 묘비명을 박하게 써준 일로 사제 인연을 끊고 노론·소론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편지는 자신과 막역한 사이였으나 한때 송시열을 지지했던 남계 박세채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노론의 거두였던 부친 민진원의 명예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선비 민창수(1685~1745)는 함경도 관찰사였던 동생의 죽음을 위로하는 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그대는 사장(동생 민경수의 호)이 의리를 밝힘으로써 시비를 바로잡는 일을 임무로 삼아 사악한 붕당을 몰아내고 군자의 길로 나아가 극언과 갈론을 이끌면서 자주 넘어지고 자빠졌으니 이를 흉한 일이라고 했으나 나는 이를 흉한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대가 소위 흉하다는 일을 나는 반드시 길한 일로 여기니, 이 때문에 위력과 형벌에 의해 죽음에 이르더라도 아름다운 이름을 반드시 후세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속내를, 그들이 직접 쓴 편지에서 가늠해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명문가의 문장’이다. 독학으로 일가를 이룬 한학자로, 20여년간 조선시대 선비의 친필서간을 수집해 온 저자가 이 중 60여명을 전주 이씨, 안동 권씨, 풍양 조씨 등 가문별로 분류하고 삶을 간략하게 소개한 뒤 이들의 편지를 현대적으로 풀어 놨다. 대개 집안 대소사 등과 관련해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내용들인데, 이러한 사사로운 내용 속에서 드문드문 삶과 철학이 읽혀지기도 한다. 작성자의 삶과 서간을 묶어 소개한 것은 행간에 담긴 의미까지 전달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서간 자체가 누구에게 보내진 것인지는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 게 아쉬운 대목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편지를 그대로 담은 사진에 눈길이 가기도 하겠다. 어떤 선비는 호방한 글씨, 어떤 선비는 단정한 글씨 등 그 성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2016-12-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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