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시적 목소리…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승화”

“꾸밈없는 시적 목소리…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승화”

이슬기, 김지예 기자
입력 2020-10-09 01:02
업데이트 2020-10-09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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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美시인 루이즈 글릭

헝가리계 유대인… 예일대 영문학 교수
1993년 작품 ‘야생 붓꽃’ 퓰리처상 수상
美 현대문학서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
역대 16번째 여성·美작가로 10번째 영예
“질병·이별 등 상실 뒤 치유 논하는 시 써
코로나 시대 문학의 원초적 복원력 기대”
오바마에게 인문 훈장 받은 글릭
오바마에게 인문 훈장 받은 글릭 2016년 9월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왼쪽)이 인문학 발전과 확대에 공헌한 이에게 주는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당시 글릭은 “고대의 신화, 자연의 마법, 인류의 본질을 관통하는 강력한 서정시를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글릭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AP 연합뉴스
2020년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7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표현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나타냈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림원은 이어 “그의 시는 명징함으로 특징을 지을 수 있다”며 “어린 시절과 가족의 삶,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밀접한 관계에 시의 초점을 맞추곤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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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역대수상자
노벨문학상 역대수상자
글릭은 1901년 이후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7명 중 16번째 여성이며, 10번째 미국 출신 작가다. 미국에서는 2016년 밥 딜런 이후 4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는 올해 노벨문학상이 비유럽권, 여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맞은 결과다. 외신들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유럽 작가가 수상한 데다 역대 수상자들 중에 여성 작가들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비판에 직면한 한림원이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글릭은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후보군은 아니었다. 나이서오즈 등 온라인 베팅 사이트에서 글릭의 순위는 19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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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저작. 퓰리처상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어워즈를 안긴 ‘야생 붓꽃’(1993).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저작. 퓰리처상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어워즈를 안긴 ‘야생 붓꽃’(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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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저작. 에세이집 ‘프루프스 앤드 티어리스’(1995).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저작. 에세이집 ‘프루프스 앤드 티어리스’(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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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저작. 미국 내셔널 북 어워즈 수상작 ‘페이스풀 앤드 버추어스 나이트’(2014).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저작. 미국 내셔널 북 어워즈 수상작 ‘페이스풀 앤드 버추어스 나이트’(2014).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글릭은 1943년 뉴욕의 헝가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식증을 앓기 시작했으며 세라 로런스 칼리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1968년 ‘퍼스트본’(Firstborn)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글릭은 1993년 시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볼링겐상, 2001년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됐다. 이후 2003~2004년 전미도서상, 2016년 미국 인문 훈장인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았다.

글릭의 수상을 두고 학계에서는 한림원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높게 봤다고 평가한다. 글릭은 거식증 병력으로 고등학교 중퇴 이후부터 7년여에 걸친 상담 치료를 받으며 트라우마와 고통 등에 골몰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그는 질병과 상실, 이별 등 인간 삶의 보편적 문제들을 자연물과 결부시켜 상실 뒤의 치유와 재생을 논하는 시들을 많이 써 왔다”며 “(한림원이) 코로나 시대에 문학이 줄 수 있는 인간성에 대한 원초적인 복원력을 기대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글릭이 2004년에 출간한 책 ‘10월’(October)은 9·11 테러로 미국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고통, 치유의 문제를 그리스 신화에 빗댄 시집이다.

또한 글릭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지적 탐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시를 쓸 때 정신분석을 차용, 이미지들에 자아를 투사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글릭이 쓴 ‘야생 붓꽃’ 등은 짧고 쉬운 단어로 쓴 서정시이지만 치고 들어오는 힘이 있는 시”라며 “주체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의 어려움을 탐구하며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공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담았다”고 평했다.

현재 글릭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거주 중이며, 예일대 영문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는 총상금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 9910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20-10-0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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