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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되듯 느긋~하다, 주4일 시골 빵집

발효되듯 느긋~하다, 주4일 시골 빵집

이은주 기자
이은주 기자
입력 2021-11-11 20:06
업데이트 2021-11-12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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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균 제빵·이윤 축소 등 자본 논리에 반기
‘…자본론을 굽다’ 반향 뒤 수제맥주에 도전장
업계서 적대시한 유산균 쓰고 숙성 과정 늘려
야생 균 공존 끝에 ‘장시간 저온 발효법’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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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일본 시골 빵집 ‘다루마리’의 주인장 와타나베 이타루의 가족. 방탄소년단(BTS)의 열렬한 팬으로 대학생이 되면 한국에서 유학하겠다는 딸 모코 덕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이 가족은 2015년부터 매년 서울을 찾아 한국 음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타루, 아들 히카루, 모코, 아내 마리코. ②멀리서 바라본 다루마리의 전경. 지즈초 나기 지역의 뒷산이 빵집을 감싸고 있다. ③이타루가 맥아와 홉을 끓여 맥아즙을 만들고 있다. 가타오카 교코·더 숲 제공
①일본 시골 빵집 ‘다루마리’의 주인장 와타나베 이타루의 가족. 방탄소년단(BTS)의 열렬한 팬으로 대학생이 되면 한국에서 유학하겠다는 딸 모코 덕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이 가족은 2015년부터 매년 서울을 찾아 한국 음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타루, 아들 히카루, 모코, 아내 마리코. ②멀리서 바라본 다루마리의 전경. 지즈초 나기 지역의 뒷산이 빵집을 감싸고 있다. ③이타루가 맥아와 홉을 끓여 맥아즙을 만들고 있다.
가타오카 교코·더 숲 제공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와타나베 이타루·와타나베 마리코 지음/정문주 옮김/더숲/252쪽/1만 6000원

드라마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이 천장에 매달린, 456억원이 든 황금빛 돼지저금통을 쳐다보던 눈빛을 기억하는가. 그들의 눈빛에는 욕망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냉혹한 자본주의는 그들을 벼랑 끝 ‘루저’로 내몰았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설계자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서 한 번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8년 이런 생각을 과감하게 실행으로 옮긴 ‘별난 장인’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시골 빵집 ‘다루마리’의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 마리코 부부다. 이들은 직접 채취한 천연균으로 빵 만들기, 이윤 남기지 않기, 일주일에 사흘 쉬기 등 자본의 논리에 반기를 들었다. “썩지 않고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결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들 부부의 소박한 이야기를 담은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2014년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고,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간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는 이후 8년 동안 그들이 마주한 도전과 변화를 담았다.

2015년 4월 돗토리현 지즈초에 새로 둥지를 튼 부부는 빵에 이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천연 효모를 통한 수제맥주를 제조하기로 한 것. 지역의 90%가 삼림인 지즈초는 인구가 적은 곳이었지만 이들 부부는 오직 야생의 누룩균을 채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이주를 결정했다. 획일적이고 억압된 분위기가 싫어 회사를 박차고 나온 이타루는 맥주 제조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고수했다. ‘맛있는’ 맥주가 아닌 ‘유일한’ 맥주를 만들기로 한 것. 맥주업계에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었고, 일부 대기업이 ‘맥주맛’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 놓았지만 그는 이렇게 외친다. “맛없는 걸 만들면 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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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기존 맥주 업계에서 적대시해 온 유산균을 적극 활용하고, 숙성 과정도 대폭 늘렸다. 숙성 기간 중에는 맥주를 팔 수 없어 돈을 벌 수 없다는 충고에도 ‘잘 팔리는 획일적인 물건보다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자’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이타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을 보장하려면 가장 약한 자가 살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던 부부는 날마다 마주하는 야생의 균에서 해답을 찾았다. 놀랍게도 균은 빵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주변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직원이 있으면 유해한 푸른 곰팡이가 피었고, 방문객이 늘어나 배기가스가 많아지면 회색 곰팡이가 피었다. 인근 농지에서 농약을 살포한 뒤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었다. 누룩균을 채취한 지 12년. 이제는 균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는 이 부부는 “최대한 많은 사람과 많은 생명체가 행복해져야 나도 행복해진다는 자연계의 논리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과학적으로는 좋은 균만 이용하고 나쁜 균은 살균·멸균하지만, 이타루는 이런 합리적 인과관계 속에서는 야생의 균이 가진 잠재력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모호함은 오히려 역동적인 사고로 이어졌고 어떤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게 해 줬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혁신적인 ‘다루마리식 장시간 저온 발효법´이다.

책의 말미에 마리코는 지즈초 마을객사(마치야도) 구축 사업을 소개한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지역 자원으로 활용하는 장기 체류형 관광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령화, 인구 감소, 산업 쇠퇴, 빈집 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들의 친환경 공동체 실험은 또 어떤 선순환을 가져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2021-11-1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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