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오롯이… ‘광장’에 나온 한국미술

입력 : ㅣ 수정 : 2019-10-24 01:58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획전
과천·서울·덕수궁 3곳서 동시 연계 진행
이한열의 낡은 운동화·김환기 작품 등
1900~2019 시대별 대표작 450여점 전시
“격동의 현대사에 대응해 왔던 미술 담아”
1987년 민중항쟁 당시 서울 연세대 인근 풍경을 재현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홀. 미술관 개관 50주년 대규모 기획전 ‘광장’ 2부가 열리는 과천관에 최병수 작가의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오른쪽)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담은 ‘한열이를 살려내라’(왼쪽)가 보인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1987년 민중항쟁 당시 서울 연세대 인근 풍경을 재현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홀. 미술관 개관 50주년 대규모 기획전 ‘광장’ 2부가 열리는 과천관에 최병수 작가의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오른쪽)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담은 ‘한열이를 살려내라’(왼쪽)가 보인다.

가을 햇살이 드는 통유리 앞으로 빛바래고 군데군데 얼룩진 흰색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낡은 천막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청년이 피 흘리며 축 늘어진 다른 청년을 부축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 모습 아래에는 짧고 강력한 구호가 적혀 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이 열사를 그린 걸개그림 아래에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열린 민주화 집회 당시 그가 신고 있었던 운동화가 놓여 있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이 열사를 그린 걸개그림 아래에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열린 민주화 집회 당시 그가 신고 있었던 운동화가 놓여 있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면 짝 잃은 낡은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운동화에 적힌 상표는 ‘TIGER’. 걸개그림 속 쓰러진 청년이 당시 신고 있던 운동화다. 오른쪽 벽면에는 노동해방과 투쟁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긴 가로 17m, 폭 21m 크기의 대형 걸개그림도 있다. 최루탄 가스 매캐한 1980년대 서울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획전 ‘광장’ 2부 전시가 마련된 과천관에서는 1950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를 조망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에서는 세월호가 사회에 던진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획전 ‘광장’ 2부 전시가 마련된 과천관에서는 1950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를 조망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에서는 세월호가 사회에 던진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 20일로 개관 5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0주년과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기획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과천과 서울관, 덕수궁 등 3곳에서 동시에 연계 진행하고 있다. 1969년 10월 20일 경복궁 뒤뜰 옛 조선총독부 미술관 자리에서 처음 문을 연 현대미술관이 3개 관에서 통합 전시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지난 100년 개화와 일제강점, 해방, 한국전쟁, 군부독재, 민주화, 그리고 시민의 촛불집회로 ‘살아 있는 정권’까지 끌어내리는 등 말 그대로 격동의 시대를 지나왔다. 그러나 지금도 국민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으로 갈려 한쪽은 서울 서초동 사거리로, 또 한쪽은 광화문광장에 몰려 저마다의 ‘정의’를 외치고 있다. 권력에 맞선 민중의 저항은 언제나 광장에서 출발했다. 현대미술관이 광장을 주목한 이유다. 현대미술관은 광장을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주는 거울”이라고도 정의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미술 100년을 대표하는 회화, 조각, 설치 등 450여점의 작품을 시대별로 구성했다. 1900년부터 1950년대를 조명한 1부는 덕수궁관에서, 1950년대부터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2부는 과천관에서, 2019년 현재 광장과 개인의 의미에 집중한 3부는 서울관에서 각각 펼친다. 지난달 개막한 3부 전시는 2020년 2월 9일 막을 내리고, 1·2부는 지난 17일 동시 개막했다. 각각 내년 2월 9일과 3월 29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1부 전시에서는 개화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이라는 역사 속에 ‘의로움’을 지켰던 인물과 그들의 유산을 소개한다. 을사늑약이 강제로 맺어지자 낙향해 우국지사 초상 연작을 그린 석지 채용신(1850~1941)과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그림을 그린 의병 출신 화가 박기정(1874~1949) 등 작가 80여명의 작품 130여점과 자료 190여점을 선보인다. 이중섭과 비견됐으나 월북하면서 평가절하된 작가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1940년대)와 ‘원두막’(1946)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예술가들의 눈으로 본 전후 50년을 다룬 2부 전시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1)에서 따온 ‘한길’, ‘회색 동굴’, ‘시린 불꽃’ 등 7개 주제로 구성했다.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와 동백림 간첩 조작사건으로 수감됐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가 각각 옥중에서 쓰고 그린 ‘이마주’(image·1968) 육필 악보와 그림 ‘구성’(1968) 등 작가 200여명의 작품 300여점과 자료 20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3부 전시는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광장의 의미와 개인, 또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청년의 정체성과 욕망을 다룬 작품을 비롯해 젠더, 난민 등 타인과의 공존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띈다. 도시와 거주지를 주제로 회화, 영상, 설치 작업 등을 선보여 온 송성진 작가는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는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한 경험을 우리 사회의 상황과 연결한 작품 ‘1평조차’(1平潮差)를 선보인다. 작품은 개인의 생존 투쟁이 일상화된 시대를 이야기한다. 저마다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 12명의 작품 23점으로 구성됐다.

윤범모 관장은 “20세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미술은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했는지를 오롯이 미술관에 담았다”고 이번 대규모 기획전을 설명했다.

글 사진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2019-10-24 25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