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차별금지법 제정의 열쇠… ‘내 일’이라는 감정이입[젠더하기+]

차별금지법 제정의 열쇠… ‘내 일’이라는 감정이입[젠더하기+]

이슬기 기자
입력 2021-07-23 15:26
업데이트 2021-07-24 16:0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다양한 논의 확대
‘내 안의 소수자성’ 깨달아 새로운 연대 모색

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 지난 16일자 기사 ‘학력차별은 정당하다?’가 나간 뒤 독자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는 “차이가 존재하고 나아가 차별이 있는 게 현실”이라며 “(기사가 말하는 세계는) 인류가 멸망하면 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 80여개에도 비슷한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2. 지난 20일 한국문화인류학회 주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에서는 강단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교수, 강사들에게도 학생들로부터 ‘강의 평가’ 라는 이름의 백래시가 날아든다는 우려가 나왔다. 행사 포스터에 이름과 소속이 나오는 주제 발표는 부담스러워 패널로만 참여했다는 한 연구자는 말했다. “점점 학생들이 소수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요. 관용을 베푸는 일을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10만 청원’을 계기로 차별금지법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면서 많은 논의들이 이어진다. 차별 금지 사유로 둔 ‘성적지향’ 등의 항목을 넘어서 ‘학력’이나 ‘고용 형태’에까지 다양한 논의가 쏟아진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안에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기본으로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학력, 고용형태 등 23개의 차별 금지 사유를 두고 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평등법에도 21개 항목이 있다.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이 우리 사회 차별의 정의를 논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논의의 폭이 넓어진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정까지 가는 길이 더욱 험난해 보인다. 차별금지법을 두고 각종 갈등 축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차별 금지 사유 중 하나인 ‘고용 형태’가 채용·인사 과정에 있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MZ세대가 전과, 학력 등의 사유를 두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항상 ‘과대 대표’ 문제를 낳는다. ‘기업 옥죄기’를 우려하는 재계의 목소리는 대기업 일변도이며, MZ세대 담론이 ‘이대녀’(20대 여성)보다는 ‘이대남’을 주로 대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반동성애 프레임으로 기독교인의 절대 다수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찬성 의견이 반대보다 많았던 것과 비슷하다.

오히려 최근의 논쟁들은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우리 안의 소수자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스무 개가 넘는 차별 금지 사유들을 대하는 개인들 각각의 온도차는 다르다. 어느 분야에선 내가 기득권인 반면 다른 분야에선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교차하는 갈등 속 소수자들이 모여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피해자가 쏘아올린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차별금지법 속 여성 의제를 다시금 환기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보면 지난 14년 간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던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이 반갑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지만 극렬한 소수의 반대로 매번 무력화됐던 법안에 이제야 다수 국민들이 감정이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법을 통해 누릴 효능감까지 개개인에게 와닿아야 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앞서 문화인류학자가 말했던 ‘관용을 베푸는 일’이 제로썸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슬기 젠더연구소 기자 seulgi@seoul.co.kr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