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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낙원 무인도’ 차귀도… 화산학의 교과서로 떠나는 여행[강동삼의 벅차오름]

‘잃어버린 낙원 무인도’ 차귀도… 화산학의 교과서로 떠나는 여행[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3-06-10 06:58
업데이트 2023-06-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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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 아들 오백장군의 막내아들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무인도 차귀도 장군바위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설문대 아들 오백장군의 막내아들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무인도 차귀도 장군바위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소설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핸드브레이크를 채우고 사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잔뜩 긴장하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여서 마치 물 먹은 스펀지처럼 축 처진다. 그럴 땐 정말 자신에게 휴가를 줘야 한다. ‘화산학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수월봉 지질트레일을 떠나는 날. ‘비움’이 없으니 마음은 ‘맑음’이 아니라 ‘흐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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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수월봉, 당산봉 그리고 차귀도
<7>수월봉, 당산봉 그리고 차귀도


# 수월봉 지질트레일… 한경면 고산리에서 2㎞ 떨어진 무인도 차귀도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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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차귀도 가는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배를 타고 차귀도 가는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천연기념물 제513호)과 차귀도(천연기념물 제422호)일대에서 펼쳐진 수월봉 지질트레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27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선 참이었다.

고산평야를 지나 차귀도 선착장 행사장에는 일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 너무 일찍 왔나 싶었다. 한치를 말리는 부둣가 상인들과 어촌의 풍경을 멀뚱하게 쳐다본다. 높이 77m의 수월봉은 승용차로 금세 도착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시간을 일부러 내지 않으면 가기 힘든 차귀도 지질 트레일을 할 참이다.

오전 9시 30분 배를 탈 예정인데 정확히 9시가 돼서야 행사요원들이 부랴부랴 메인 천박을 열어제쳤다. 수월봉 지질트레일 지도가 그려진 팸플릿에 스티커를 받아가야 배편을 할인가로 1만원(성인요금 1만 8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잽싸게 스티커를 받고 간신히 배에 올랐다. 동호회인지 모임인지 열댓명씩 한꺼번에 일행들이 승선했다.

배가 출발하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잠적’이 나오고 있다. 잠적한 배우는 김희애다. 그는 바로 이 차귀도를 거닌다. 배는 채 10분도 안돼 차귀도에 도착한다. 도착한 선착장 왼쪽에는 외국 어느 섬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환상적이다.

#설문대할망의 아들 오백장군의 막내 장군바위… 대숲을 지나면 펼쳐지는 잃어버린 낙원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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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 장군바위 쪽에서 멀리 수월봉이 보인다. 제주 강동삼 기자
차귀도 장군바위 쪽에서 멀리 수월봉이 보인다. 제주 강동삼 기자
특히 차귀도의 장군바위는 자연이 빚은 조각의 절정을 보여준다. 화산활동때 화도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되지 않고 굳어져 암석이 된 장군바위. 이곳에서는 장군바위(시스텍)뿐만 아니라 차귀도 형성 초기에 만들어진 응회암과 이후 분출한 용암과 분석 등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암석을 한 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 장군바위는 설문대 할망의 아들 5백명 중 막내아들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섬을 보려면 대숲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예부터 대나무가 많아 대섬 또는 죽도로 불렸던 차귀도다. 서걱서걱 바람에 대숲이 일렁인다. 오르자 마자 사람이 살았을 것 같은 집터가 우선 반긴다. 항간에 장사했던 곳이라는 설도 설득력이 있을 정도로 섬 초입에 자리잡고 있었다. 폐허가 된 돌집 벽 일부만 남아 있다. 만약 여기에 사람이 살았다면 낙원에서 살았을 것만 같다. 세상의 그 어떤 맛뷰가 차귀도에 비할 까 싶다. 어쩌면 그리스어로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은 아니었을까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상상에 빠졌다.

#1970년대까지 7가구 살았던 곳인 만큼 집터 흔적…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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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에 도착해 바라보는 차귀도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것으로 마치 외국의 한 성처럼 보인다. 제주 강동삼 기자
차귀도에 도착해 바라보는 차귀도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것으로 마치 외국의 한 성처럼 보인다. 제주 강동삼 기자
차귀도는 지금은 무인도지만 실제 1970년대 말까지 7가구 정도가 이 섬에서 보리, 콩, 참외, 수박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단단.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연자방아, 빗물저장시설 등이 남아 있다. 심지어 어디선가 닭울음 소리가 들려 지금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곳 차귀도는 1977년에 개봉한 이어도라는 영화와 1986년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의 지옥훈련 장소의 배경이 되기도 했단다.

차귀도라는 이름은 옛날 중국 호종단이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경계해 지맥과 수맥을 끊고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수호신이 매로 변해 갑자기 폭풍을 일으켜 이 섬 근처에서 배를 침몰시켜 돌아가는 것을 차단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섬은 분화구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고 허허벌판이다. 장군바위 쪽으로 가는 산책로에는 지천이 산딸기다. 산책하는 것도 잊고 따먹는 여인네들과 부딪친다. 교회에서 성지 순례길을 걷고 있단다. 그러고 보니 김대건신부 표착지 용수성지가 용수리에 있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한 손에 듬뿍 따서 수십년만에 맛본다. 달달한 맛이라기 보다 새콤한 맛에 가깝다.

서쪽 언덕 끝에 서 있는 차귀도 등대에 이르렀다. 한경면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무인 등대로, 195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자동적으로 어둠을 감지하고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등대가 위치한 볼래기 동산은 차귀도 주민들이 등대를 만들 때 돌과 자재를 직접 들고 언덕을 오르며 제주어로 숨을 ‘볼락볼락’ 가쁘게 쉬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다만 아쉬운 건 차귀도 서쪽과 북쪽, 즉 용수리쪽 절벽 해안에는 어디선가 밀려 온 해양쓰레기로 가득하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조각같은 섬 앞에서 미안해지는 감정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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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도 집터. 대나무숲이 많은 죽도. 한치 말리는 선착장에 바라본 차귀도. 차귀도에서 산딸기를 따는 탐방객(시계방향). 제주 강동삼 기자
차귀도 집터. 대나무숲이 많은 죽도. 한치 말리는 선착장에 바라본 차귀도. 차귀도에서 산딸기를 따는 탐방객(시계방향). 제주 강동삼 기자
고산리 해안에서 약 2㎞ 떨어진 차귀도는 2개의 응회구와 2개의 분석구로 이루어진 복잡한 화산섬이다. 차귀도의 동쪽(부둣가 인근)에 응회환과 분석구가 있고, 서쪽에도 응회환과 분석구가 각가 분포하고 있다. 동쪽과 서쪽의 화산은 형성 시기가 크게 다른데 동쪽은 약 40만년 전 당산봉과 같이 형성되었고, 서쪽은 외도와 같이 25만년 전에 형성됐다. 일반적으로 마그마가 분출하면 하나의 화산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차귀도는 한 지점에서 분출 시기를 달리해 총 4번에 걸쳐 만들어진 화산체가 포개진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를 보이는 화산체는 매우 드물어 국제학술지에도 소개되고 있다.

이날은 괌에서 불어오는 마와르 태풍으로 인해 차귀도를 한바퀴 돌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려 수월봉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녹고 남매의 아픈 사연이 흘리는 눈물 녹고물, 그리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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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학의 교과서 수월봉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오른쪽 아래 사진은 녹고남매의 전설이 깃든 녹고대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화산학의 교과서 수월봉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오른쪽 아래 사진은 녹고남매의 전설이 깃든 녹고대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차로 올라가는 수월봉에서 바라보는 풍광과 인근 당산봉(당오름)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확연히 다르다. 어느 편을 택해도 후회는 없다. 수월봉 꼭대기의 전망대에선 차귀도, 송악산, 단산, 죽도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낙조 광경은 사라봉의 일몰 광경과도 견줄 만하단다. 물론 당산봉도 마찬가지.

화산학의 교과서를 가까이서 보고 싶으면 수월봉 아래 길로 내려가 깎아 만든 듯한 떡시루 같은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2㎞ 산책로를 걷는게 낫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지질공원답게 오묘한 지질 자원과 풍광은 예약해서 만나는 초고층 빌딩에서 바라보는 제주하는 것조차 아까울 만큼 아름답다. 이 해안절벽은 ‘엉알’이라 불리며, 벼랑 곳곳에는 샘물이 솟아올라 ‘녹고물’이라는 약수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월봉 가기 직전 언덕엔 녹고대가 있다. 옛날 수월이와 녹고라는 남매가 홀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수월봉에 오갈피라는 약초를 캐러 왔다가 누이인 수월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자 녹고는 슬픔을 못이겨 17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 이 녹고의 눈물이 곧 녹고물이라고 전하며 수월봉을 녹고물 오름이라고도 한다. 이곳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차귀도, 누운섬, 당산봉을 비롯해 광활한 고산평야와 산방산, 한라산이 두루보이고 날씨가 맑은날은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보일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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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리 당산봉(당오름)에서 바라본 고산평야와 수월봉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고산리 당산봉(당오름)에서 바라본 고산평야와 수월봉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 고산평야와 수월봉이 한눈에… 차귀도를 바라보며 걷는 산책로 당산봉
차귀도 선착장으로 가는 초입 오른 쪽에 있는 당오름(당산봉)에선 보다 신비스럽게 차귀도가 다가온다.

당산봉은 높이 148m, 둘레 약 4.6㎞의 오름으로 고산 평야 쪽 정상까지는 20여분만 올라가면 쉽게 다다른다. 약 45만년 전 뜨거운 마그마가 지하에서 상승하다가 물과 폭발적으로 반응해 만들어진 수성화산체로 안덕면에 있는 산방산과 용머리와 더불어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 중 하나이다.

또 다른 묘미는 시원한 고산평야와 수월봉의 풍광과 해안선을 만나며 멀리 산방산과 한라산까지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당산봉 정상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탁 트인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당산봉 일대에 넓게 펼쳐진 고산평야는 당산봉과 수월봉, 차귀도 등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용암대지를 덮으면서 만들어진 화산재 평야로 약 1만년전 제주도에 처음 정착한 신석기인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이로부터 제주인들의 역사가 시작됐다. 고산리유적 선사축제가 이곳에 매년 열려 신석기 시대의 체험을 할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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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봉에 바라본 고산평야, 사유지 푯말. 당산봉모습. 용수리해안까지 이어지는 당산봉(시계뱡향). 제주 강동삼 기자
당산봉에 바라본 고산평야, 사유지 푯말. 당산봉모습. 용수리해안까지 이어지는 당산봉(시계뱡향). 제주 강동삼 기자
당산봉은 오래전부터 당오름이라고도 불러왔는데 당이란 신당을 뜻하는 말로 옛날 당산봉 기슭에 뱀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이 있었다는데서 유래됐다. 당산봉을 한바퀴 도는 지질탐방로는 약 4㎞거리이며,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또한 당산봉은 올레 12코스와 순례길이 통과하는데 당산봉의 해안절벽을 따라 용수포구까지 이어져 있다.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북쪽(용수리)으로 흐르면서 말발굽 형태의 화산체가 만들어졌다.

곳곳에 사유지라는 팻말이 이질적으로 눈에 띈다. 실제 탐방객들의 발길에 치여 이곳 당산봉도 몸살을 앓면서 지난해 제주도를 상대로 소송까지 가기도 했다.

정상에서 다시 내려와 차귀도를 볼 수 있는 서쪽 언덕 좁은 길로 들어서니 차귀도로 향하는 배가 푸른 바다를 가르고 있다. 그리고 생이기정 절벽길에 다다른다.

제주어로 새를 뜻하는 생이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진 말로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길이란 뜻을 담고 있다. 생이기정에서는 가마우지를 흔히 볼 수 있다.

가마우지는 잠수성이 뛰어난 물새이지만 기름샘이 없어 잠수를 한 후에는 깃털을 말리기 위해 주로 갯바위나 해안절벽을 이용한단다. 이때 깃털을 말리면서 배설하는 습성 때문에 화산재 절벽이 배설물로 하얗게 변했다. 풍광과 숨은 절경에 취해 내려오다가 용수리 해안까지 뚜벅뚜벅. 어느 순간 뚜벅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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