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옥시 英본사·정부 책임 손 못 대고 끝나는 檢수사

[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옥시 英본사·정부 책임 손 못 대고 끝나는 檢수사

강신 기자
강신 기자
입력 2016-06-26 22:36
업데이트 2016-06-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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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논란 22년

146명 사망·1528명 피해에도 정부·학계·언론 ‘경고등’ 못 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146명(정부 집계·316명 판정 대기 중)의 사망자를 포함해 1528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 학계, 언론 등은 경고등을 켜지 못했고 검찰도 피해가 보고된 지 5년이 지나서야 수사 결과를 내놓게 됐다. 이번 주에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옥시 영국 본사의 책임이나 정부의 책임까지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1994년 11월 SK케미칼의 전신 ㈜유공이 첫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를 만들어 판매한 이후 22년간의 과정을 짚어 봤다.

2011년 4월부터 5월까지 벌어진 임신부 연쇄 사망 사건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임신부 4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폐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11월에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물질이 함유된 옥시싹싹을 비롯한 6개 제품에 대해 수거 명령도 내렸다. 하지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CMIT 및 MIT가 함유된 제품에 대해서는 사용 자제 및 판매 중단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부의 시스템도 곳곳이 구멍이었다. 유공은 1996년 PHMG를 카펫 항균제로 개발해 환경부에 신고했지만 옥시는 2001년 PHMG를 넣은 가습기 살균제를 시판했다. 환경 당국은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한 PHMG에 대해 안전 인증 검사를 하지 않았다. 산업자원부는 2007년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국가통합인증(KC)까지 해 줬다. ‘1차 경보’는 2008년 발령됐다.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 병원의 소아호흡기 교수들이 원인 불명의 폐 손상 환자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2008년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며 감염성은 아니라는 선에서 조사를 접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다시 산모들의 집단 이상 증세를 보고한 ‘2차 경보’가 울린 뒤 정밀 조사에 착수,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직접 원인”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 결과 옥시, SK케미칼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가 내부적으로 유해성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유공은 1996년 PHMG를 카펫 항균제로 신고하면서 제조신고서에 사고 시 응급조치 사항으로 ‘흡입 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 섭취 시 물로 입을 씻어 내거나 충분한 물을 마셔 토해 낼 것’이라고 적었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이 사실을 조작·은폐하기 위해 서울대 조모(56) 교수에게 연구용역비 2억 5200만원과 자문료 1200만원을 줬고, 호서대 유모(61) 교수에게 자문료 2400만원을 건넸다.

검찰은 올해 1월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집중 수사에 돌입했다. 지난 22일까지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판매해 181명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를 포함해 6명을 구속했다. 2005년 6월부터 5년간 옥시 최고경영자로 재직한 존 리(48) 전 대표는 불구속 기소했다. 옥시 영국 본사의 책임을 규명하지 못했고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점은 수사의 한계로 지적된다. 가해업체 책임자 등 20명 안팎을 재판에 넘기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2016-06-2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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