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 <5> 현금
●코로나에 현금기피 현상 더 두드러져
신용카드부터 직불카드까지 각종 ‘플라스틱 머니’가 현금 거래를 대체한 지 오래다. 모바일 결제 솔루션까지 가세하면서 현금 수요는 급격히 줄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현금 실종을 가속화했다. ‘바이러스가 지폐에서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면서 현금 기피 현상이 두드러졌다.
현금 뭉치가 두둑한 지갑이 부의 상징이던 시대는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계산대 앞에서 뭉칫돈을 세면, 한 세대 전에서 온 사람이거나 뒤가 구린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광풍까지 몰아쳐 종이돈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다.
화폐는 역사의 변천에 따라 변해 왔다. 물물교환을 했던 원시시대는 곡식이나 가축이 화폐 구실을 했다. 이후 소금이나 옷감, 가죽 같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물 다음으로 발전한 화폐는 금속이다. 청동기시대는 청동검이, 철기시대는 철전이, 그 뒤에는 금·은이 사용됐다. 이후 지폐가 발명·통용됐다.
지폐 역시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미 현금보다 디지털 화폐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동전이 먼저 퇴출당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2015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향후 추진 과제의 하나로 ‘동전 없는 사회’를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이를 위해 거스름돈을 카드에 충전하거나 계좌로 이체해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충격을 줄이기 위한 과도기적 방안일 뿐, 결국 동전은 물론 종이돈도 사라질 것이라는 예고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언이다.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는 ‘현금 없는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2014년부터 지폐와 동전을 발행하지 않는 대신 최소의 필요량만 위탁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문가들은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현금 없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종이돈 없는 세상이 SF소설 속에 나오는 얘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게 한다. 그 하나가 모든 거래가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화폐로 거래되는 세상이다.
여러 국가는 투명성과 정확성 때문에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디지털 화폐는 거래내용만 추적하면, 그 돈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디지털 화폐를 쓰면 탈세와 뇌물 공여 등 뒷거래가 불가능하다. 사실상 화폐 개혁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반면 국가가 모든 개인의 거래를 파악할 수 있어 국가 권력이 미치는 영향력과 범위가 급격히 증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 화폐는 디지털 거래 기록을 남기면서도 익명성을 보장한다. 비트코인은 중앙의 서버 없이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곳에서 사용 가능하기에 국경도 없다. 국가가 관리할 수 없는 디지털 화폐인 셈이다. 현금 이후 시대인 디지털 화폐 세상을 예고하는 두 개의 화폐 체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 기반의 디지털 화폐와 익명의 개인 네트워크로 이뤄진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화폐가 그것이다.
이제는 동전(coin)의 시대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동전은 금속으로 만든 돈이 아니라 네트워크 속에서 진화하는 화폐들이다. 지갑에서 사라진 현금들이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현금을 세거나 카드로 계산하는 대신 암호화폐로 결제하는 시대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2021-05-04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