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사이드] 몇 미터 앞이 홀컵인지 척척… 신통방통한 ‘손안의 캐디’

[주말 인사이드] 몇 미터 앞이 홀컵인지 척척… 신통방통한 ‘손안의 캐디’

입력 2013-12-21 00:00
수정 2013-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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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캐디’ 골프용 거리측정기에 숨은 이야기

주말 골퍼들은 핑계가 많다. 새로 바꾼 채 탓, 잔디 탓, 코스 탓에 전날 마신 술 탓까지 이유는 다양하다. 캐디 탓도 빠지지 않는다. 공을 잘못 놔 줬거나 실제 남은 거리보다 캐디가 짧거나 길게 불러 줬다는 것이 주된 레퍼토리다. 최근의 과학기술은 골퍼들의 핑곗거리 하나를 줄여 준다. 전자캐디라고 불리는 골프용 거리측정기다. 손안의 작은 기계가 정확히 몇 미터 앞이 목표인지 일러 주니 신통방통할 따름이다. 국내 골프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이용 중이라는 골프 거리측정기 속 숨은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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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방식을 쓰는 골프 거리측정기 데카시스템 관계자들이 수도권 한 골프장에서 실측을 하고 있다. (1)티박스에서 시작점의 거리를 잰 뒤 (2)OB나 해저드 경계선을 따라 걷다 야드목과 그린(중간점) 거리를 점검하고 (3)이후 그린 주변에서 다시 거리를 측정한다. 골프버디 제공
GPS 방식을 쓰는 골프 거리측정기 데카시스템 관계자들이 수도권 한 골프장에서 실측을 하고 있다. (1)티박스에서 시작점의 거리를 잰 뒤 (2)OB나 해저드 경계선을 따라 걷다 야드목과 그린(중간점) 거리를 점검하고 (3)이후 그린 주변에서 다시 거리를 측정한다.
골프버디 제공


거리측정기는 크게 위성항법장치(GPS) 기술과 레이저 측정 방식의 제품이 있다. 모두 과거 산업용이나 군사용으로 쓰던 기술을 골프장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 대중적인 것은 GPS 거리측정기다. 원리는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같다. 지상 2만㎞ 위에 떠 있는 GPS 위성에서 전달받은 전파 신호를 잡아내 홀과 이용자의 거리를 계산해 불러 주는 방식이다. 모든 GPS 위성에는 3만 5000년이 지나야 1초 정도의 오차를 낸다는 원자시계 4개가 들어 있다. GPS 위성은 전파를 이용해 정확한 시각과 제 위치를 지상으로 보내 주는데 워낙 멀다 보니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수신기의 시각과 위성에서 보내는 시각은 차이가 생기는데 두 시각의 차이에 전파의 속도를 곱해 주면 지상의 내가 있는 자리로부터 인공위성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구할 수 있다. 같은 작업을 동시에 4개 이상의 인공위성에서 반복하면 지구 위 수신기의 좌표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컴퍼스를 이용해 반지름(위성과의 거리)이 다른 4개의 원을 그리는 과정에서 각각의 원들의 부분집합인 좌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왼쪽부터 레이저 방식의 거리측정기, GPS 방식 거리측정기, 디지털 볼마커.
왼쪽부터 레이저 방식의 거리측정기, GPS 방식 거리측정기, 디지털 볼마커.
골프 거리측정기가 세상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덕이 크다.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당시 소련의 영공을 침범해 격추당하고 나서 미국은 군사용인 GPS를 민간인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단 민간용에는 일부러 오차를 심은 어림값을 보냈다. 테러용 등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000년 들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어림값 때문에 생기는 오차의 범위를 줄이게 하면서 민간용 GPS 서비스의 정밀도가 30m 이하로 높아졌다. 이후 GPS 수신기의 칩세트를 개발하는 회사들은 수학자를 고용해 어림값의 정밀도를 높였고 현재 내비게이션, 휴대전화, 골프 거리측정기 등 민간 GPS 기기에 들어가는 상업용 GPS 칩세트를 탄생시켰다. 수년의 연구 결과 현재 GPS 기반의 골프 거리측정기는 오차의 폭을 2~3m로 줄였다. 태생적으로 작은 오차를 인정할 수 없는 탓에 일부 골프 거리측정기 회사들은 일일이 골프장에 나가 실측하는 방법으로 정확도를 높인다.

실측 방법은 다음과 같다. 2명이 한 팀이 돼 측정 장비를 들고 먼저 티박스의 위치를 입력하고 한 명은 오른쪽 아웃 오브 바운즈(OB) 선상을, 다른 한 명은 왼쪽 OB 선상을 따라 걷는 식이다. 코스 중간에 페어웨이 벙커나 해저드 등이 있으면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다시 각각의 좌표를 입력한다. 그린은 물론 티샷이 아주 잘 맞아 OB가 날 수 있는 위험 지역도 표시한다. 18홀 기준으로 1개 코스를 입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정도다. 초기 측량 자체를 거부하는 골프장이 많았지만, 골프 거리측정기를 사용하는 인구가 늘면서 콧대 높은 명문 골프장도 먼저 연락해 거리 측정을 요구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런 요구가 없으면 거리측정기를 만드는 회사가 3인 또는 4인 요금(그린피)을 내고 골프장에 들어가 측정을 하기도 한다. 골프장에서 측량을 끝까지 거부하거나 접근이 어려운 코스는 구글맵이나 상업용 지도를 이용하기도 한다. 실제 회원권 가격이 무려 21억원에 달하는 신세계 트리니티의 경우 골프장 측이 보안 등을 이유로 측량을 거부해 국내에서 실측을 못한 유일한 코스로 알려졌다. 외국의 골프장도 일부 실측을 한다. 미국처럼 수출 물량이 많거나 동남아같이 한국인의 이용이 많은 코스는 현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같은 방법으로 측량한다.

골프버디를 생산하는 데카시스템 관계자는 “상업용 지도나 구글맵 등을 이용해 오차를 바로잡는 방법은 한계가 있어 직접 비용을 들여 하나하나 데이터를 입력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실측을 한 정보가 들어간 기기와 단순히 지도를 넣은 기기는 정보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내리막과 오르막 등을 감안해 거리를 일러 주는 제품은 없지만 업계에선 ‘기술적으로는 간단한 일’이라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등산용 GPS 장비에 쓰이는 몇몇 센서 등만 추가하면 기술적으로는 고저차는 물론 바람의 방향이나 속도까지 일러 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면서 “단 기계가 모든 것을 일러 주는 것은 규칙 위반인 데다 골프의 재미도 반감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업체들이 탑재를 안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 역시 초기 군사용으로 개발됐다. 1960년대 미 육군이 M60A1 전차에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탑재해 명중률을 높인 것이 효시다. 이후 헬기나 자주포, 쌍안경 등 군사용을 넘어 건설이나 선박, 비행기 등 산업용 측량기기로 널리 쓰이던 것이 최근에는 골프나 사냥 등 스포츠나 레저용으로 퍼져 나가는 추세다. 레이저 거리측정기는 기계에 내장된 망원경을 이용해 표적(핀)을 겨냥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레이저를 발사해 반사되는 시간을 측정한다. 최근 거리측정기에 쓰이는 레이저는 인체에 무해한 파장대(1.5㎛ 이상)를 사용한다. 각막은 0.4~1.4㎛인 빛을 흡수하지 못하고 대부분 투과시키는데 이런 레이저 빔을 눈에 쪼이면 망막에 열손상을 준다. 최근 제품은 자이로스코프센서가 달려 있어 현재 위치와 목표점의 고저차를 고려해 거리를 알려 주는 제품도 나왔다. 레이저 거리측정기는 측정만 정확히 하면 오차를 1m 내 이하로 줄일 수 있어 GPS 방식보다 정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무겁고 원하는 포인트를 찾아 일일이 거리를 재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그린에도 거리측정기가 등장했다. 이른바 디지털 볼마커다.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 센서 등을 장착해 그린 위 공에서 홀컵까지의 거리와 경사도를 읽어 주는 제품이다. 원리는 앞에서 설명한 레이저 거리측정 방식과 비슷하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캐디가 없는 골프장이 많은 곳에서는 당연히 골퍼가 스스로 거리를 계산하고 클럽을 선택한다. 이 때문에 거리측정기 시장이 먼저 우리보다 먼저 열렸는데 지역마다 호불호는 갈린다. 미국은 GPS 방식과 레이저 방식의 선호도가 반반으로 갈린다. 반면 유럽은 8대2 정도로 레이저 방식을 선호한다. 캐디 없는 골프장이 드문 우리나라는 거리측정기 시장이 비교적 늦게 열린 경우다. 최근 GPS 방식의 기기 가격이 내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90% 이상이 GPS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골프 중계를 보면 정작 프로 선수들이 이런 거리측정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정규대회에서 거리측정기를 사용하면 규칙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럼 골프 선수들은 거리측정기를 이용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아마추어보다 프로 선수들의 거리측정기 의존율이 더 높다. 프로 선수들은 본게임에 들어가기 전날 연습 라운드에서 거리측정기로 미리 주요 지점의 거리를 측정한 뒤 야디지북(골프장 정보를 적어 놓은 수첩)에 공략 포인트를 꼼꼼히 적는다. 피칭은 물론 드라이버까지 공이 떨어질 지점을 미터 단위로 정확히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레이저 거리측정 방식의 기기를 선호한다. 골프로 한 해 870억원을 넘게 버는 타이거 우즈도 수십만원짜리 거리측정기보다 거리를 정확히 읽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2013-12-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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