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사무친 기억과 경험…피와 눈물에 젖은 시[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뼈에 사무친 기억과 경험…피와 눈물에 젖은 시[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24-09-13 00:45
수정 2024-09-1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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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989년생 英시인 데일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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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통해 발표한 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르사 데일리워드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한 글은 독자가 자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준석 전문기자
인스타그램을 통해 발표한 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르사 데일리워드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한 글은 독자가 자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준석 전문기자


세상의 온갖 끔찍한 것들이 시인의 뼈에 사무친다. 깊이 아로새겨진 상처 위에 시가 적힌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에는 얼마간의 피와 눈물이 맺혀 있는 듯하다.

2014년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던 시를 그러모아 출판한 시집 ‘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 시인 이르사 데일리워드(35)를 지난 9일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데일리워드는 시인 외에도 모델,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경험과 기억을 나눈다는 건 무척 중요합니다. 과거에 묻힌 진실을 다시 들추고 그것을 적절히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 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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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뼈’
시집 ‘뼈’


한국어로 번역된 데일리워드의 책은 시집 ‘뼈’와 자서전 ‘테러블’두 권이다. 둘 다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특히 ‘뼈’는 끔찍한 경험이 어떻게 아름다운 시로 적힐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 준 시집이다. 시인은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시를 직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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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테러블’
자서전 ‘테러블’


표제작인 시 ‘뼈’의 도입부는 독자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긴다. “‘울지 마./좀 있으면 너도 좋아할걸’이라고 말한/‘하나’로부터.//…//‘하지만 네 느낌이 너무 좋아서/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라는 ‘넷’.” 폭력 이후의 시공간에서 시인은 담담하게 자기 안에 박힌 고통의 조각을 꺼내어 보인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어요. 제가 특별한 것 같지만 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죠. ‘솔직함’은 타인에게 영감을 줍니다. 솔직하게 쓰인 글을 읽는 독자는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자기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을 겁니다.”

데일리워드는 종이책을 무대로 활약했던 과거 작가들과 결을 달리한다. 이미지와 짧은 글 중심의 소셜미디어(SNS)인 인스타그램에 시를 발표했고 팔로어들과 문학적 교감을 나눴다. 물론 지금은 종이책으로도 작품이 출간돼 있지만 여전히 인스타그램은 그에게 중요한 플랫폼이다. 이런 지점에서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공유하면서 가볍게 소비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와도 공명한다.

“인스타그램은 엘리트주의에 갇혔던 시라는 장르를 대중화시켰습니다. 더 많은 젊은이가 시에 접근할 수 있게 됐죠. 그들은 단순히 시를 소비하는 걸 넘어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영국의 한 소도시에서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데일리워드는 독실한 예수재림교 신자인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일찍이 퀴어 정체성을 밝히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팝가수 비욘세의 비주얼 앨범인 ‘블랙 이즈 킹’(Black is King)의 각본을 집필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잠깐 활동했던 그의 시에는 줄루어로 된 문장도 등장한다. 이토록 멀고도 낯선 곳에서 활동하는 시인의 시가 우리에게 뼈저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다루고 있죠.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예술은 어디서나 모두에게 깊은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시인으로서 저의 역할은 이런 보편성을 계승하는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토대로 단어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겠죠. 저의 시가 새로운 미학과 감각으로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제 글을 본 많은 이가 자신만의 글쓰기를 하면서 점점 관습에 도전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문학을 만들어 내길 바랍니다.”
2024-09-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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