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수회담 이후 정국변화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영수회담은 교착 상태에 빠진 정국을 정상화하고 각종 분열을 봉합하는 ‘최후의 카드’로 인식돼 왔다. 과거 퇴로가 없는 극한의 대치 상황에서도 영수회담 한 번으로 뻥 뚫리곤 했다. 그러나 회담이 늘 만병통치약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전통시장 찾은 朴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오후 경기 용인시의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추석 경기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눈 뒤 한 상인에게서 과일을 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전의 영수회담은 최근보다는 비교적 성과가 좋았다. 2000년 6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의약분업과 남북 정상회담 등을 의제로 두 차례 영수회담을 했다. 그 결과 의료계 갈등을 해소하는 데 물꼬를 텄고 이는 그해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데도 적지 않은 원동력이 됐다.
과거 영수회담은 지금과 달리 ‘밀실 회동’ ‘뒷거래’ ‘이면 합의’ 등의 형태로 이뤄진 까닭에 비판도 없지 않았다. 199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였던 DJ와의 영수회담에서 20억원의 정치 자금을 건네기도 했다.
영수회담은 갈수록 성과가 없을 뿐 아니라 개최 횟수도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삼(YS) 전 대통령 때에는 10차례, DJ 때는 8차례였지만 노 전 대통령 때는 2차례, 이 전 대통령 때는 3차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정치권에 ‘당청 분리’ 기조가 흐르면서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줄어든 탓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2013-09-18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