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리용호 외무상 외교무대 데뷔, 핵보유국 자신감 표출할 듯의장과 北과 우호관계 라오스 변수…남중국해 놓고 미중대립 예상
국제사회 대북압박 공조의 고삐를 죄려는 한미와 새 외교수장을 내세워 핵보유국 지위 굳히기를 시도할 북한이 어느 때보다 공세적 외교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는 오는 26일 제23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필두로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등이 잇따라 열린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리용호 북한 신임 외무상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6자회담 당사국 외교수장 대부분이 비엔티안을 찾아 각종 양·다자 회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5월 리수용 전임 외무상에게 바통을 넘겨받아 다자외교 무대 ‘데뷔전’에 나설 리용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6자회담 당사국과 아세안 등 27개국이 가입한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협의체로, 북한은 매년 ARF 외교장관회의에 외무상을 파견해 왔다. 올해 회의도 리용호가 참석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무수단(화성-10) 중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을 계기로 핵보유국 주장을 한층 노골화하는 북한은 새 ‘얼굴’인 리용호를 통해 더욱 공세적인 외교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에서 미국을 겨냥, “근본적으로 달라진 우리의 전략적 지위”를 바로 보라며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에 앞서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을 잇따라 중국에 보내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 흔들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주요국 외교 수장들이 모두 모이는 이번 ARF에서는 이런 그간의 공세를 ‘집약하는’ 적극적 외교전에 나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3일 “앞서 양자, 반민반관 대화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강경한 입장을 발신한 것이 정식 다자 무대인 ARF까지 계속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올해 행보는 리용호 외무상의 개인적인 스타일과 맞물려 더욱 관심을 끈다. 리용호는 과거 대미 외교와 북핵 협상에 깊숙이 관여하며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드물게 유연하고 세련된 외교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러시아와의 양자 회동, 아세안과의 다자회의에서 대북제재에 대한 협력을 재확인하고, ARF 의장성명 등 회의 결과문서에 강력한 대북 메시지를 담는 데 외교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시기상 미중 간 갈등 사안인 남중국해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커 북핵 문제에 대한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오는 12일 필리핀의 제소로 이뤄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관해 판결을 내릴 예정이어서 ARF 회의까지 여파가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은 판결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남중국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미중간 힘겨루기가 가열되면 북핵 공조가 상대적으로 퇴색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가 입장표명을 요구받으면서 다시금 외교적 시험대에 오를 수도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북핵, 남중국해는 물론 동중국해 문제까지 신경 쓰는 나라들이 있다”며 “하드코어 안보 문제가 (ARF에서) 훨씬 더 부각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올해 회의를 주재하는 아세안 의장국이 아세안 내에서도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라오스라는 점은 또 하나의 변수다.
특히 ARF 의장성명은 성안 과정에 의장국의 입김이 비교적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강력한 문안 도출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