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 사상최초 분당 현실화…꽃길보다는 가시밭길

보수정당 사상최초 분당 현실화…꽃길보다는 가시밭길

입력 2016-12-21 13:27
업데이트 2016-12-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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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 분열은 패배” “집나가면 시베리아” 인식 많아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 30여 명이 21일 연내 탈당을 공식 선언하면서 보수정당의 첫 분당 사태가 현실화됐다.

지난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로 분화한 뒤 다시 친박과 비박(비박근혜)계로 갈라진 여권의 양대 계파가 결국 오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온 끝에 결별수순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 보수정당의 탈당 역사를 살펴보면 ‘홀로서기’의 길은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에 가까웠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일부 의원이 당을 떠나는 탈당 사태는 더러 있었지만, 이번처럼 당이 두 조각 나는 분당은 없었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95년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것이 분당에 가까운 탈당을 통해 비교적 성공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민주당, JP의 공화당 등 3당이 합당해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불완전한 통합과 계파 간 권력 투쟁이 이어지면서 ‘한 지붕 세 가족’이란 지적을 받았다.

YS 측근들에 의해 당내 입지가 좁아진 JP는 결국 민자당을 탈당해 1995년 자민련을 창당했다. 당시 JP와 함께 탈당한 의원은 총 9명이었다.

그러나 이후 보수정당에서의 탈당이 성공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보수세력 내에서 ‘집 나가면 시베리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1997년 이인제 전 의원이 신한국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김대중(DJ)·이회창·이인제 ‘3파전’에서 여권 분열을 일으키며 3위로 낙선했다.

2000년에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공천 결과에 반발한 조순·김윤환·이기택 등 중진 의원들이 탈당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지만, 그해 총선에서 지역구 1명과 비례대표 1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이는 ‘보수정당의 분열은 패배’라는 학습효과를 강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3년에는 당시 이부영·이우재·김부겸·김영춘·안영근 의원 등 ‘독수리 오 형제’로 불리는 의원 5명이 한나라당에서 집단 탈당한 사례가 있지만,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한 것이었다.

2008년에는 소위 ‘공천학살’로 불렸던 친이계의 압박으로 친박계가 한나라당을 대거 탈당한 사례가 있다.

당시 서청원 의원을 필두로 ‘친박연대’는 총선에서 14명의 당선자를 배출했고, 김무성 전 대표 중심의 ‘친박무소속연대’에서는 12명의 당선자가 나왔다. 이후 이들은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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