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황용순·유종남 선생에 건국훈장

국가보훈처, 황용순·유종남 선생에 건국훈장

박홍환 기자
입력 2018-02-27 19:00
업데이트 2018-02-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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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통치가 극에 달하던 1943년, 전북 전주의 전주사범 교직원과 학생 신분이었던 황용순(당시 21세)과 유종남(당시 18세). 엄혹한 시기에 두 청년은 민족의식 관련 서적을 서로 돌려 읽으며 의기투합했다.

일본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주변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킬지 밤새 논의하곤 했다. 전쟁 말기 일제의 전시동원체제, 즉 황국신민화의 본질을 간파해 민족의식으로 정면 대응을 시도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결국 일제 경찰에 검거됐고,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단기 1년·장기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제의 판결문에는 두 사람에 대해 “조선의 독립을 학수고대하는 자”라고 적혀 있다.

그토록 염원했던 해방의 기쁨도 잠깐, 이번엔 동족 간 전쟁이 두 사람을 또 시련 속으로 내몰았다. 그래도 운명은 두 사람을 또다시 하나로 묶어 줬다. 6·25전쟁에 동반 참전한 두 사람은 1950년 8월 13일 함께 전사했다. 독립운동에 이어 구국의 참전, 그리고 동시 전사까지 황용순 선생과 유종남 선생의 기막힌 이야기는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다음달 1일 제99주년 3·1절을 맞아 황 선생과 유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키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두 선생과 함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인사 중에는 국내와 미주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차인재 선생도 포함돼 있다. 차 선생은 1920년 6월 경기 수원에서 삼일학교 교사로 근무 중 비밀결사조직 구국민단 교제부장을 맡아 임시정부에서 국내로 보낸 독립신문, 대한민보 등을 배포했다. 같은 해 8월 미국으로 건너가 주로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대한여자애국단,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의 단체에서 중견 간부로 활동하면서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남편 임치호 선생에게도 지난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이번 3·1절 기념식에서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50명이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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