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 까매진 얼굴로 “24살 용균이를 생각한다”...단식일기 15일째

강은미 까매진 얼굴로 “24살 용균이를 생각한다”...단식일기 15일째

기민도 기자
입력 2020-12-26 06:00
업데이트 2020-1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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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작업장에서 홀로 일하다 죽어간 24살 용균이를 생각한다.”(단식 1일차)

“오후 2시. 잔인하고 무료한 오후다.”(단식 9일차)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릅니까?”(단식 1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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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원내대표가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 페이스북 캡쳐
강은미 원내대표가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 페이스북 캡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성탄절인 25일 단식 15일째를 맞이했다.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을 처리하겠다는 집권여당 대표의 언급이 ‘헛말’로 끝나자 시작된 단식이 보름째 이어지며 몸을 상하게 하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강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올리며 “메리 크리스마스~단식농성 15일차.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을 간절히 바라며”라고 적었다. 정의당 관계자는 “성탄절에도 농성장에서 카드를 만들며 단식을 이어나갔다”며 “산재 유가족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연말에는 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원내대표는 그동안 단식을 하면서 드는 솔직한 심경을 페이스북에 올려 왔다. 그는 단식 9일차에 “오후 2시. 잔인하고 무료한 오후다. (중략) 오후 5시. 진료. 이제는 정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고 남기며 고통을 담담히 적었다. 단식 8일차에는 “뜨신 밥에 묵은 김치와 엄마의 오리탕과 아버지의 김칫국, 멸치무침이 가장 먹고싶다”고 말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그럼에도, 단식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단식 1일차 일기에 일부 나온다. 그는 단식 1일차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모두 잠든 조용한 시간. 깜깜한 작업장에서 홀로 일하다 죽어간 24살 용균이를 생각한다”고 적었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인 김미숙씨와 고 이한빛의 아버지인 이용관씨도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중대재해법 논의 과정, 단식의 고통, 진심이 담긴 강 원내대표의 ‘단식일기’를 모아봤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 재단이사장 등이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 강은미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심상정 의원. 연합뉴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 재단이사장 등이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 강은미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심상정 의원. 연합뉴스
단식 1일차/12월 12일 오전 1시 16분(페이스북에 올린 시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모두 잠든 조용한 시간. 깜깜한 작업장에서 홀로 일하다 죽어간 24살 용균이를 생각한다.

큰 녀석이 24살이다. 자식을 키우며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을 애지중지 키운 지를 안다.

(중략) 부모님들의 단식이 길어지지 않게 빠른 시일 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법제정의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단식 2일차/12월 12일 오후 11시 15분

두 번째 3번째 날이 제일 힘들다더니, 하루 종일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배고프다는 생각외에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겨우 2일째인데 밥 심으로 살고 밥 순이라 그런가 보다. 배고픔을 잊고, 그나마 힘이 되는 것은 곳곳에서 보내주는 응원 문자다.



단식 4일차/12월 15일 오전 1시 3분

이용관 아버님 김미숙 어머님이 하루하루 수척해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날이 너무 추워서 아버님은 손끝이 갈라지셨고, 어머님은 손톱 밑이 다 일어났네요. 아버님은 발에 땀이 많으셔서 발이 많이 시러워하시구요.

오늘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김태년 원내대표 등 많은 분들이 농성장에 방문해서 여러 가지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좀 더 빨리 가시화되어 연말에는 유가족들이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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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맨왼쪽)와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씨(오른쪽)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2020.12.15  연합뉴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맨왼쪽)와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씨(오른쪽)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2020.12.15
연합뉴스
단식 7일차/12월 18일 오전 2시 4분

경영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만들어지면 기업이 다 망한다‘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그동안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지 못해 죄송합니다. 21년 동안 OECD 국가 중 산재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워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산재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기자회견을 했어야 합니다.

단식 8일차/12월 19일 오전 3시 42분

하루가 다르게 몸에 기운이 떨어진다. 소위원회 상임위 본회의, 의사일정도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17일은 민주당, 18일은 국민의힘 의원총회가 있어 총회장 입구에서 단식하시는 유가족이 연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전달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약속했던 말들을 실천해야 할 시간이다.

단식을 하며 무엇보다 힘든 것은 배고픔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매일 단식이 끝나면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한다. 뜨신 밥에 묵은 김치와 엄마의 오리탕과 아버지의 김칫국, 멸치무침이 가장 먹고싶다. 새벽 4시가 다되어가는 시간, 텐트 안의 찬 공기에 손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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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2주기’인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돔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참여연대 제공
‘김용균 2주기’인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돔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참여연대 제공
단식 9일차/12월 19일 오후 11시 41분

오후 2시. 잔인하고 무료한 오후다. 단식의 단점 중 하나는 일에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어도 글자만 읽지 내용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토요일 오후, 국회 본관 앞은 적막마저 흐를 정도로 고요하다. 단식 농성자들은 빠져나가는 기력을 조금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각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후 5시. 진료. 단식농성자들이 주의해야 할 일들을 일일이 말씀하시고, 주변에도 당부를 한다. 지난번보다 3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정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

단식 11일차/12월 21일 오후 3시 18분

어제도 3분이 다녀오지 못했습니다....막아야 합니다. 멈춰야 합니다. 갔다 오겠다는 소박한 약속, 안전한 일상을 누릴 권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지켜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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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을 방문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13일차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0. 12. 23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을 방문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13일차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0. 12. 23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단식 12일차/12월 23일 오전 12시 34분

단식 10일차 부터는 김미숙님 이용관님 두 분이 부쩍 힘들어하십니다. 정치인들이 계속 약속은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일정은 잡지 않고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핑퐁게임만 하고 있네요.

요즘 계속 떠오르는 문구가 있습니다. 맹자.

“창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릅니까?”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수없이 말을 해도 경영책임자가 위험을 제거하지 않은 불법을 저질러 노동자가 죽는 것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릅니까? 다시 한번 묻게 됩니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릅니까?”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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