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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떠나고 한 달 안 돼 따라간 전두환

노태우 떠나고 한 달 안 돼 따라간 전두환

김가현 기자
김가현 기자
입력 2021-11-23 18:04
업데이트 2021-11-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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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60년 지기’ 노태우와 떠날 때까지 운명 함께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DB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DB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12·12쿠데타 동료이자 정치적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불과 28일 만이다. 60여년간 운명을 함께한 두 사람의 인연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진 셈이다. 지난달 26일 노씨의 부고를 들은 전씨는 침묵 속에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당시 건강 문제로 빈소를 찾지 못했고 부인 이순자씨가 대신 조문했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둘은 휴전선 가까운 곳에 나란히 누울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고 유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현재 경기 파주시 검단사에 임시 안치돼 있으며, 유족이 파주 국유림을 묘역 부지로 요청한 상태다.

실과 바늘 같았던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졌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나왔고, 한 살 어린 노씨는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경북고를 졸업했다. 1952년 육사 제11기 동기생으로 다시 만난 뒤 군부 내 전씨의 커리어를 노씨가 그대로 따랐다. 결국 대통령직까지 노씨는 전씨의 뒤를 이었다.

5공화국 기간 노씨는 2인자이자 ‘차기 권력’이었지만,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렸다. 결국 전씨는 노씨를 후계자로 낙점했고 후임 대통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노씨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권력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군부 등 현직에 남아 있던 전씨의 측근들을 숙청함으로써 상왕 노릇을 하려던 전씨에게 일격을 가했다. 또 여소야대 국면에서 전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야당에 밀려 전씨를 내쳤고, 결국 전씨는 부인 이씨와 백담사에서 769일간 ‘귀양 생활’을 했다. 하지만 노씨 퇴임 후 집권한 김영삼 정권이 둘을 사법 심판대에 세우면서 다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다. 법정에 나란히 선 둘이 손을 잡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노씨의 병세가 악화된 2014년은 두 사람이 만난 마지막 해로 기억된다. 당시 노씨의 자택을 방문한 전씨는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 했고, 노씨는 알아본다는 의미로 눈을 깜빡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가현 기자 kgh52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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