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속초해전 재조명] 해상경비 귀환 중 北군함 3척에 포위… 납북 피하려 목숨 건 교전

[1974년 속초해전 재조명] 해상경비 귀환 중 北군함 3척에 포위… 납북 피하려 목숨 건 교전

입력 2013-06-28 00:00
업데이트 2023-05-23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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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근무자 증언·진상 조사서 토대로 한 해경 경비정 863함 피침 상황 재구성

39년 전 오늘 강원도 동해안 속초 앞바다에서 우리 해경 사상 초유의 참사가 발생했다. 경계 근무에 나섰던 해경 863함 경비정이 북한 군함과의 교전 끝에 침몰, 26명의 경찰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그러나 지금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잊혀진 전투가 됐다. 29일로 11주년을 맞는 ‘제2연평해전’으로 숨진 6명의 장병에 대해서는 국가적인 추모 행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당시 숨진 해경들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잊고 있다. 국가기록원이 보관한 진상조사서와 당시 해경 근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해경 863함 피격 사건을 재조명했다.





1974년 6월 28일 북한 군함에 의해 침몰한 속초해양경찰대 소속 863함 앞에 선 허판구 부함장(왼쪽·당시 경위, 실종)과 출항 직전 863함과 승조원들의 모습(오른쪽).  해양경찰청 제공
1974년 6월 28일 북한 군함에 의해 침몰한 속초해양경찰대 소속 863함 앞에 선 허판구 부함장(왼쪽·당시 경위, 실종)과 출항 직전 863함과 승조원들의 모습(오른쪽).
해양경찰청 제공


1974년 6월 26일 오후 6시. 28명의 승조원(경찰 14명, 전경 13명, 보조인력 1명)을 태운 속초해양경찰대 소속 863함 경비정(181t)이 속초항 전용부두(속초수협 옆 부두)를 출발했다. 오징어 성어기라 해상에는 어선들이 많았다. 계절적 요인으로 안개도 자욱했다. 출항 3일째인 28일 새벽 해안으로부터 40마일 지점에서 순항 경비를 계속했다. 귀항일이 내일(29일)인데, 갑자기 레이더에 이상이 생겼다. 짙은 안개로 위치 확인이 어려워 인근 해역에서 근무 중인 해군 57함과 정보를 교환, 위치를 추정해야 했다.

같은 시간 속초해양경찰대 상황실. ‘레이더 고장’을 알리는 863함의 무전 통신이 반복됐다. 863함 근무자가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해군 57함에 레이더 고장 사실을 알렸다. “현지를 이탈해 거진항으로 귀항하겠다”는 863함 당직사관의 보고도 이어졌다. 이제 근처 해역에 있는 861함이 863함 경비 구역까지 맡아야 했다.

나침판에 의지해 귀항하던 863함이 57함에 “침로를 달라”고 요구했다. 57함이 방위각도를 불러 줬다. 오전 8시 45분쯤 863함은 “여전히 시정이 좋지 않다”고 보고했다. 바로 그때 상황실에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북괴군 군함 우측에서 발견.”

북 전투함 3척이 863함을 포위했다. 북으로 피랍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대로 피랍될 경우 경비정에 있는 각종 비문 등 작전계획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었다. 저항하면 전원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863함에는 80구경 함포 1문과 50구경 중기관총 3정, 30구경 경기관총 2정과 소총 등 개인화기가 전부였다. 이 화력으로는 도저히 북의 군함 3척을 감당할 수 없었다. 30초나 지났을까. 갑자기 고성과 함께 총소리, 함포소리가 진동했다. 상황실에는 “북괴군과 교전 중, 지원 바람”이라는 허판구(당시 경위) 부함장의 다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이상 아무런 말도 전해지지 않았다.

속초해양경찰대에서는 이튿날 오전이 돼서야 현장을 찾았다. 선체는 온데간데없고 몇 구의 시신만 떠 있었다. 손상대(당시 30) 순경 등은 물 위에 떠 있던 전투경찰 시신 6구를 인양, 오후 2시 속초항으로 힘없이 귀항했다. 시신은 참혹했다. 구명복을 착용하고 총탄 맞은 다리에는 속옷을 찢어 동여맨 지혈대가 그대로 있었다. 얼마나 처절하게 전투를 벌였는지 다리, 어깨 등 지혈대가 2곳인 경우도 있었다. 근처 속초의료원에 안치한 후 밤을 새워 가며 시신에서 파편 등을 제거하고 옷을 갈아입힌 뒤 태극기로 감쌌다. 3일 후 화장하는 과정에서는 제거한 파편 수보다 더 많은 파편이 추출됐다. 2주일 후 모규회(당시 30) 순경은 포항 영일만 해안에서 경찰 6기 동기생 김원한 순경과 선배인 김시오 순경의 시신을 수습했다. 피침 사고 현장에서 163마일이나 떨어진 곳까지 표류된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경북 영천군 임고면과 경남 울주군 농소면(현 울산시)이 고향인 두 사람이 부모형제와 처자를 찾아 이 먼 곳까지 흘러왔다”며 안타까워했다. 희생자는 함정 안정일 경감을 포함해 모두 26명. 경찰관 2명과 전투경찰 6명은 시체로 인양됐고 18명이 실종됐다. 진종영 순경과 전투경찰 신명선은 북에 생포돼 피랍된 사실이 얼마 후 열린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석상에서 확인됐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2013-06-2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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