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 울리는 금미호 선장 피랍일기

심금 울리는 금미호 선장 피랍일기

입력 2011-02-16 00:00
업데이트 2011-02-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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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4개월만에 풀려난 금미305호 김대근(54) 선장의 일기가 화제다.

 연합뉴스가 단독 입수한 김 선장의 일기에는 124일간의 피랍 기간 피눈물나는 인질 생활과 해적질에 강제로 동원됐던 일,각국 군함들이 여러 차례 접근했다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돌아간 사례들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생사의 기로에서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기록한 김 선장의 일기를 정리해 본다.

 ◇탈출 기회 노렸지만 허사=“배에 대게(crab) 마취용 수면제가 1천알 정도 있기에 해적들이 차를 마실 때 수면제 탄 물을 마시도록 주방장에게 당부했지만 잘못하다간 우리 모두 죽는다고 울면서 사정을 했다.

 그래도 수면제 먹고 조는 놈 있으면 너와 내가 총을 빼앗아 죽기를 불사하고 싸우자고 결의했지만 허점을 찾을 수 없어 결국 포기하고,차라리 내가 수면제 먹고 잠들어버릴까 수없이 생각했다.”(10월12일)“내가 자는 방에 유일한 무기가 있다.그것은 12파운드짜리 아령 2개다.잠자는 해적 한 명만 쥐도 새도 모르게 박살내고 권총을 뺏으면 한 명씩 차례로 처치하는 시나리오를 수십번도 더 세웠지만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렇게 허술한 놈들도 아니고 실패하면 다 죽는다는 위험도 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살인마가 된다는 도덕론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미칠 지경이다.”(10월 29일)◇일사불란한 해적=해적은 금미호가 영세어선으로 몸값을 지불할 형편이 되지 않자 다른 선박에 대한 해적질에 모선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해적 보트로는 먼바다에서 해적질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라인 LPG 운반선이 약 4마일 지점까지 다가오는 것이 확인되자 해적대장이 긴급명령을 내린다.해적들은 보트 2대에 대원 10명,AK소총,권총,로켓포,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하고 사다리,줄사다리,던지기용 외줄로프 등을 싣고 출발했다.약 10분 후 배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우리 배에 남은 해적들이 총을 쏘면서 축하하며 성공했다고 엄지손가락으로 사인을 한다.”(10월 24일)◇용의주도한 해적=해적들은 소말리아어와 영어에 능통한 통역요원을 통해 해적과 관련한 인터넷 뉴스,BBC 라디오뉴스 등을 챙기며 정보를 축적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43명을 죽여도 돈 1달러도 나올 데가 없다고 호소했지만 막무가내다.해적은 인터넷 들어가서 ‘305 Golden Wave(금미호)’ 치면 한국 선원 2명이 중요하고 한국 정부에서도 인사관리 잘하라고 하니 돈 받는 데는 지장없다며 끝까지 우긴다.과연 한국 정부가 국민의 재난을,그것도 해적테러에 어떻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지 의문이다.”(11월 3일)“Golden Wave는 CNN이나 BBC에서 계속 뉴스로 보도되고 군함과 헬기 조종사들이 알고 있는지라 선명 모두 지우고 SAGAL이란 이름으로 붙여 놓았다고 하는데 아직 확인은 못했다.꼼짝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11월 20일)◇재벌 부럽지 않은 해적=“상선 1척 잡으면 기본이 600만달러라고 하니 그 돈으로 케냐,동남아,유럽 등지에 부동산을 사고 주식도 사고 재벌보다 더 잘살고 있는 실정이다.우리 케냐 선원들한테 한달 급료가 얼마냐고 묻기에 150달러 정도 된다니까 웃으면서 뭐하러 배 타느냐 해적 한번 하면 너희 평생 버는 것을 한번에 해결한다 하며 당직 서는 조타수에게 원서 내라고 한다.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10월25일)“비슷한 시기에 함께 잡혀 왔던 일본 선적 NYK호가 풀려났다.얼마에 합의됐냐고 묻자 700만달러 받고 풀려났다고 한다.부럽다.회사도 튼튼하고 국가도 힘이 있는지라 빨리 합의되나 보다.”(11월 1일)◇선박이 월척으로 보이는 인도양=“해적들이 우리 배 주변에 스피드보트 3척이 보인다고 총을 가지고 완전 전투태세다.또 다른 해적떼들이 우리를 보고 좋은 먹잇감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듯 쏜살같이 접근해온다.선수에 있던 해적들이 이 배는 우리가 잡은 배다 하고 고함을 치고 총으로 곁으로 오라고 손짓하니 해적 잡으러 다니는 위장 경비선인 줄 알고 삼십육계 도망을 친다.”(10월 20일)“여기 소말리아 하라데레 해적 기지에만 지금 우리 빼고 유조선 인도선적,이탈리아 일반화물선,일본 자동차운반선,어제 잡아온 LPG운반선 등 4척이 잡혀와서 정박 중이다.이런 해적기지가 소말리아 해역에 여러 군데 있다고 한다.각 배마다 해적 우두머리도 다 다르다고 한다.”(10월 27일)◇군함 여러차례 접근,해적은 휘파람=“납치된 배로 납치된 배를 끌고 가는 웃지 못할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고,군함은 전후방에 각각 한 척씩 따라오며 기동시위를 하고 있다.그러나 해적들은 인질 방패막이가 있는지라 조금도 걱정 않고 오히려 음악을 틀고 콧노래를 부르며 승리감에 젖어 있다.”(10월25일)“(금미호 동원된 첫 해적질에 납치됐던) 요크호의 선장이 UHF 16번 채널을 통해 애절하게 군함을 불러댄다.그리고는 군함이 30마일 밖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전부 죽이겠다고 총을 겨누고 있으니 민간인 죽이기 싫으면 빨리 철수하라고 애절하게 호소한다.아마도 해적대장이 옆에서 시키는 것 같다.결국 군함은 서서히 멀어져갔다.해적질 한두 번 하는 놈들이 아니니까 모든 것이 프로다.”(10월 26일)◇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오늘 밤이 시월의 마지막 밤,갑자기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가 생각나는구려.그 옛날 가난했지만 희망에 부풀었던 신혼생활 때 부산 서면 카페에서 장병화 선배가 부르던 잊혀진 계절 노래가 더욱 생각나는 밤이오.시월의 마지막 밤에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10월31일)“내가 진 빚 중에 제일 큰 빚이 당신에게 진 빚일 게요.이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절망을 딛고 꼭 성공하여 코스모스보다 더 맑은 청초한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소.사랑하오.”(1월13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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