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인스턴트 이성관계…사춘기 정서 악영향 우려
‘진심으로 오래갈 남자친구 찾아요. 키 162 넘고, 13∼15세 OK’여자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한 ‘사이버 연애’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 한 장으로 이성을 평가하고, 익명성을 방패 삼아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왜곡된 인간관계가 자칫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단계에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넷카페.
이성 친구와 소통하는 게 목적인 이 카페에는 ‘남자친구를 찾는다’는 여성 회원들의 글이 하루 평균 70건 가까이 올라오고 있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짝’을 찾는 모습보다 더 이색적인 건 여성 회원들의 나이, 상당수가 11세(초 5년)에서 13세(중 1년) 정도다.
다음달 중학교에 입학하는 A(13)양은 자신의 얼굴 사진과 함께 ‘쓸만 한 남친 찾아요. 오크(’못생긴 사람’이라는 은어)나 변태(’성(性)적으로 밝히는 사람’이라는 은어)는 NO. 수원 근처 사는 분. 카카오톡 아이디 ○○○로 자소서(자기소개서) 보내세요’란 글을 올려놨다.
곧바로 또래 남학생들은 A양의 외모를 평가한 댓글을 달았고, 이 중 일부는 A양이 ‘마음에 든다’며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놓기도 했다.
오로지 사진 한 장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익명성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것.
다른 포털사이트의 비슷한 인터넷 카페 회원인 B(14)양도 최근 같은 방법으로 또래 남학생 8명을 알게 됐다.
카페에서 초등생들은 이렇게 알게 돼 연락하며 지내는 걸 ‘사귄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B양은 ‘사귀던’ 상대 8명 중 5명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성(性)과 관련된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 무서웠다며 피해 경험담을 올려놓기도 했다.
’애인을 구한다’는 글을 올린 C양은 “사실은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남자친구가 있지만 심심풀이로 메신저 남친을 만들려고 글을 올렸다”며 “주변엔 잘 돼서 실제로 만나 사귀는 친구도 있지만 쉽게 만나고 쉽게 잊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남자초등학생 D군은 “메신저 애인과 진지한 얘기도 많이 나누지만 나이도 속이고 사진도 가짜로 올려놓는다”며 “대부분 한두 번씩 메시지를 주고받고 끝낸다”고 전했다.
한 학부모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빨리 성숙해 이런 일이 가능한 것 같다”며 “혹여 딸아이가 문제 있는 남학생을 만날까 겁난다”고 전했다.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종현 교수는 “인격적으로 성숙하기 전에 왜곡된 이성관계를 반복적으로 맺다 보면 성인이 됐을 때도 원만한 이성관계를 맺는 게 어려울 수 있다”며 “또래의 남학생들은 성적 호기심은 많은데 반해 윤리의식은 낮은 편이어서 자칫 쉬운 이성관계들이 성범죄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