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관리 사각지대 ‘가정 어린이집’

보육 관리 사각지대 ‘가정 어린이집’

입력 2013-02-22 00:00
업데이트 2013-02-2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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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 “우유 빨리 처먹어 XX야”… “상처 안 보이게 머리 때려라”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상습적으로 때리고 감금한 어린이집 원장이 경찰에 붙잡혔다. 원장은 서류를 조작해 국고보조금 11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어린이집에 딸을 보내고 있던 A씨가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놀이터에 숨어 있던 전 보육교사가 작심한 듯 다가와 “원장님이 아이를 학대한다”고 귀띔했다.

어린이집 원장이 돌도 안 된 딸아이의 머리를 때리고 욕설을 퍼붓는다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A씨는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귀띔해 준 보육교사가 원장에 원한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른 보육교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교사들은 “어떻게 아셨어요?” 혹은 “원장님 아직도 그러세요?”라며 학대사실을 인정했다.

A씨는 곧바로 어린이집 이용을 중단하고 주변 부모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증거를 잡기가 힘들었다. 원생 20명 이하의 ‘가정 어린이집’으로 분류된 이곳은 영유아보육법상 폐쇄회로(CC)TV를 설치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었다. A씨는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이 전직교사·실습생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원장 박모(58·여)씨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젖병을 강제로 아기들 입에 밀어넣으면서 “빨리 처먹어 XX야”라고 욕을 했고, 한 시간 넘게 방안에 가두고 울다 지칠 때까지 방치했다. 교사들에게는 “괜히 상처나게 하지 말고 안 보이는 머리를 때려라. 애들은 머리를 세게 문지르면 겁을 낸다”고 가르쳤다. A씨는 “머리 감는 걸 좋아하던 애가 언제부턴가 집에서 머리만 쓰다듬어도 자지러지더라. 내가 잠깐만 곁을 떠나도 다리를 붙잡고 울었다”고 가슴을 쳤다.

수사 중 다른 혐의도 포착됐다. 원장은 친딸을 보육교사로 허위등록해 환경개선비·급여 등을 챙기거나 지출증빙 서류 없이 운영비를 유용하는 등의 다양한 수법으로 9개월간 1100만원 상당의 국고보조금을 편취했다. 어린이집은 최근 3년간 단 한 번도 관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재무회계, 아동관리, 급식시설 등에 관해 정기점검을 받지 않았다. 서울 시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어린이집의 수에 비해 지자체 담당인력이 태부족이어서 일일이 점검하기가 어렵다”면서 “이는 대부분 지자체에 공통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송파경찰서는 21일 박씨를 아동복지법 및 영유아보육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는 돈을 빼돌린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아이들을 학대한 일은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2013-02-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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