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설움 악용 ‘정규직 미끼’로 사기 행각

비정규직 설움 악용 ‘정규직 미끼’로 사기 행각

입력 2013-06-05 00:00
업데이트 2013-06-05 16:2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경남도내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영양사로 근무하는 A씨는 지난 5월 20일 낮 12시께 식당에서 김모(53)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씨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상사인 것처럼 태연하게 A씨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A씨는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누군지 몰랐지만 실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전(前) 교장 선생님이세요?”라고 물었고 김씨는 ‘그렇다’라고 속이고 계속 통화를 했다. 그러고는 곧 A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500만원을 주면 도 교육청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기간제 계약직이어서 고용 여부가 불안할뿐더러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수당 등으로 고민하던 A씨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A씨는 결국 전화를 받은 지 2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그날 오후 2시 10분께 창원시내의 한 다방에서 김씨를 만나 곧바로 현금 500만원을 건넸다.

김씨는 당시 ‘김씨의 부탁을 받고 왔다’면서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A씨에게서 돈을 받은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경남의 한 군청에서 기간제 계약직 영양사로 근무하는 B씨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김씨의 말에 속아 지난 5월 22일 오후 2시 50분께 창원시내 한 다방에서 김씨를 만나 현금 2천만원을 건넸다.

A씨와 B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으나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수상하다는 생각에 5월 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전과 23범에 사기전과만 19범이었다.

두 사람은 사기극에 놀아났고 애써 모은 돈만 한순간에 날린 사실을 알고는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부산 등지에서도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사기 행각을 벌인 적이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조사를 맡은 경찰의 한 관계자는 “김씨는 요즘 비정규직이 사회문제화하고 정부 차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를 노려 아무 학교나 군청 등에 전화를 돌리며 사기를 쳤다고 진술했다”며 “절박한 처지의 피해자들이 김씨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간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은 5일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을 노려 정규직 전환 또는 채용을 미끼로 한 사기 행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전북 지역에서 한모(50·여)씨가 자녀를 대기업 정규직으로 채용해주겠다고 속여 지인 등 6명에게서 52차례에 걸쳐 3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사기)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채용)’을 향한 절박한 갈망이 범죄에 이용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실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 1∼3월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41만2천원으로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253만3천원)의 절반 수준(55.7%)에 불과했다.

이 기간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112만1천원)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4년 이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고용 불안은 물론이고 저임금 등으로 고통받는 비정규직들은 어느새 ‘이등 시민’으로 인식되는 처지에까지 이르렀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 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