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폭로, 공익제보인가 비밀누설인가

’국정원 댓글’ 폭로, 공익제보인가 비밀누설인가

입력 2013-06-17 00:00
업데이트 201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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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정치·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일단락됐지만 수사 결과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혹 폭로의 계기인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불거진 과정이 검찰 수사로 상세히 드러나면서 ‘공익 제보’와 ‘비밀 누설’이라는 양 측면을 놓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새누리당과 여권 옹호론자들은 전·현직 직원 2명이 연루된 내부기밀 유출이 민주당과의 ‘뒷거래’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민주당과 야권 지지자들은 국정원 불법 활동의 배후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몸통설’과 함께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수사 결과가 각 진영의 상황 인식과 정략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호형호제’ 두 사람에 국정원 뚫렸다 = 16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국정원을 명예퇴직한 김모씨와 후배 직원 정모씨는 1997년께 광주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곧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고 김씨가 퇴직한 뒤에도 가까이 지냈다.

여러 사업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김씨는 2011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김씨는 19대 총선을 앞두고 경기도 한 지역의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출마가 좌절된 그는 지난해 11월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당내 입지를 구축할 방법을 궁리하던 김씨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야당 후보들에 대한 비난 게시글과 댓글 작업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이를 대선 전략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김씨는 심리전단의 활동을 공론화해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문 후보의 당선에 유리하다는 생각에 정씨와 함께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사이버 선거전’ 전화·미행으로 확인 = 정보 수집에 나선 김씨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수십 명이 강남 일대 PC방, 커피숍 등에서 언론사·정치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야당을 비난·반대하는 게시글을 올린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김씨는 정씨를 통해 심리전단 직원들의 정보와 동태 파악을 요청했다. 결국 김씨는 직원들의 주소를 알아냈고 이들을 미행하기도 했다.

또 김씨는 공중전화나 음식점의 일반 전화 등을 이용, 심리전단 당직실로 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직원인 것처럼 가장, “연말 선물을 동료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주소를 모른다”고 속여 직원 여러 명의 주소를 알아내 미행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친 끝에 그는 여직원 김모씨가 서울 성북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인터넷 댓글’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여직원이 국정원에서 나와 모처로 이동하는 것을 본 김씨는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연락했다.

민주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 선관위 직원, 경찰관 등이 오피스텔로 출동해 문을 걸어잠근 여직원과 대치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檢 “기밀을 ‘선거 기획’에 활용” = 검찰은 김씨와 정씨의 범행이 순수한 공익제보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익’을 얻기 위해 벌인 ‘선거 기획 범행’으로 봤다.

검찰은 “당시 여론조사 결과가 박빙으로 나오는 등 판세가 치열한 접전 상황이었다”며 “김씨가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하고,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여론을 조성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말했다.

불이익을 감수하며 공익 제보를 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이익을 위해 국정원 기밀을 누설했다는 것이다.

당시 현직이던 정씨가 김씨를 도운 의도도 다분히 개인적이었다. 정씨는 13년째 승진이 안돼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인사불만이 쌓여 있었다. 그는 문 후보가 당선되면 자신도 승진하거나 요직에 발탁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김씨의 범행을 도왔다.

하지만 국정원 내부 감찰에서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 정씨는 파면됐다. 그는 파면 직전 내부망에 접속해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 자료 54건 중 42건을 열람하고 이를 손으로 베껴 보관했다. 정씨는 이 가운데 23건을 민주당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김씨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정씨를 선거법과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을 제외한 국정원 간부들과 심리전단 직원들은 불기소 처분돼 “공익제보자만 처벌받았다”는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공익제보자로 인정되려면 동기도, 수단도 중요하다”며 “기밀을 유출할 때 사용한 수단과 행동, 동기를 보면 불법행위를 외부에 알리려는 의도보다는 정치적 이용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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