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떡값’ 동네 수영장까지 물 흐려… “강습 빠져도 만원씩”

‘명절 떡값’ 동네 수영장까지 물 흐려… “강습 빠져도 만원씩”

입력 2013-09-14 00:00
업데이트 2013-09-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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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찬조금 기승… 일상 스며든 부패적 관행

“추석을 맞아 선생님께 명절 떡값 1만원씩 걷어 드리기로 했습니다. 강습 빠지는 분들은 미리미리 챙겨 주세요.”

서울에 사는 주부 김도경(29)씨는 최근 모르는 휴대전화 번호로부터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언짢았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다니는 수영강습의 같은 반 회원이 보낸 것으로 추석을 앞두고 강사에게 전달할 ‘명절 떡값’을 모아야 하니 동참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1만원을 내라고 통보하는 메시지를 받고 황당했다”면서 “한 달에 8만원씩 꼬박꼬박 내는 수강료에 강사에게 돌아가는 강습비가 모두 포함된 것인데 명절 떡값이라는 정체불명의 웃돈을 왜 더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스포츠센터와 문화센터 수영 강사에게 챙겨 주는 이른바 ‘수영장 떡값’이 추석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십명의 수영강습 회원들이 돈을 걷어 강사에게 떡값 명목으로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전달하는 수영장 떡값은 최근 몇 년 새 상당수 수영장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고위공직자에게 전달하는 뇌물이나 일부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달하는 촌지를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온 떡값이 취미나 여가 생활을 즐기는 스포츠센터에까지 자연스럽게 파고든 것이다.

12년째 수영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연수(49)씨는 13일 “규모가 큰 스포츠센터부터 지역의 구립수영장까지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강사 떡값 챙겨주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이나 ‘스승의 날’과 같은 기념일이 다가오면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수영동호회에서는 떡값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가 벌어진다. 회원 수가 4만명이 넘는 온라인 수영동호회의 회원인 윤여준(33)씨는 “상당수 회원이 강사 떡값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실제 수영장에 가면 다른 회원들의 눈치를 보다가 돈을 낼 때가 많다”면서 “불합리한 관행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이미 뿌리가 깊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떡값 관행이 만연해지자 일부 대형 스포츠센터와 구립체육센터는 회원들에게 ‘떡값을 걷어 강사에게 전달하는 행위를 근절해 달라’는 안내문까지 내걸고 있다.

서울지역의 구립스포츠센터 관계자는 “올해 설 명절에 일부 회원 주도로 일괄적으로 1만원씩 걷어 떡값을 모아 문제가 됐다”면서 “돈 문제로 시비가 오가지 않도록 떡값 걷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일상생활 깊이 파고든 떡값 문화가 한국 사회의 불투명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투명사회운동본부 관계자는 “법과 제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패 문화를 근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해 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2013-09-1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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