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녀’ ‘○○녀’ 넘치는 여성 조롱 남성들의 질투?

‘김치녀’ ‘○○녀’ 넘치는 여성 조롱 남성들의 질투?

입력 2013-10-22 00:00
업데이트 2013-10-2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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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여성비하 신조어로 본 사회심리

지난 10일 ‘맥도날드 할머니’ 권하자씨가 돌봐줄 가족 없이 석달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자 인터넷 포털에는 ‘김치녀의 최후’라며 고인을 조롱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내용은 거처도 없는 권씨가 허영심 때문에 매일 밤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영자신문을 읽으며 과거의 ‘우아한’ 생활 방식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여성의 인격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2000년대 ‘된장녀’가 대세였다면 지금은 ‘김치녀’로 변화했다. 된장녀는 웬만한 한끼 밥값에 해당하는 브랜드 커피를 즐겨 마시며 해외 명품 소비를 선호하는 젊은 여성을 비하해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전통 음식 김치에 빗댄 김치녀라는 말은 본래 ‘명품을 밝히고 소비활동의 대부분을 남자에게 의존하는 젊은 여성’이라는 의미로 쓰이다가 점차 한국 여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말로 확대되고 있다.

이달 초 예비군 동원훈련장에서 국방부 강연자가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녀와 된장녀 때문에 여자를 만나기도 힘든데 북한에서는 500만원이면 된다”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신조어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여성을 조롱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즉시 ‘○○녀’라는 딱지가 붙고 네티즌들은 이를 비난하는 악플 공세를 펼친다.

예컨대 지난해 아이에게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혔다고 ‘국물녀’, 아버지뻘 되는 중년 남성을 도로변에 무릎 꿇렸다고 ‘버스 무릎녀’로 매도당하는 식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일방의 주장을 반영한 오해로 밝혀졌다.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21일 “인터넷을 사용하는 젊은 세대일수록 일상에서 일탈된 새로운 어휘를 만들 때 쾌감을 느낀다”면서 “유행어가 생명력을 얻어 오래 지속된다면 표준어에 편입될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인격적 모독과 비하의 의미를 담은 말들은 그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직장인 이모(31·서울 강남구)씨는 “여성 관련 기사에는 무조건 김치녀라고 욕하거나 여자의 신체에 빗대 말하는 댓글들이 많은 추천을 받는 것을 보면 불쾌할 때가 많다”고 씁쓸해했다.

여성 비하 신조어는 여성의 권리와 위상이 강화되는 추세 속에 일부 남성의 상대적인 열등감과 박탈감이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와 결합되면서 익명성을 무기로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 내재된 남성 우월주의적 잔재와 시각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부와 지위에 대한 상향 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일부 여성이 조금이라도 차별적인 행동을 보이면 바로 된장녀나 김치녀 등에 빗대 손가락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대 여성의 지위가 예전보다 확실히 나아졌지만 일부 여성은 데이트와 결혼 등에서 남성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면서 “여성의 의식이 위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양성 평등의 과도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13-10-2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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