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빨간줄’에 집필진 폭발…한국사 갈등 확산

잇단 ‘빨간줄’에 집필진 폭발…한국사 갈등 확산

입력 2013-11-30 00:00
업데이트 2013-11-30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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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단에 따라 새 학기까지 파문 이어질 수도

29일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받은 한국사 교과서의 6종 집필진이 수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은 잇단 수정 조치가 검정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교학사를 제외한 교과서 집필자 모임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한필협)는 이날 오후 긴급 회동을 하고 “수정명령은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이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포함해 전문가 자문회의 및 수정심의회의 명단과 회의록 정보공개청구, 헌법소원 등 모든 법적 수단을 통해 위법성 여부를 가려보겠다”고 덧붙였다.

한필협은 교육부가 수정심의회를 구성해 수정명령을 내린 것이 대법원이 판시한 ‘검정 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2008년 금성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에 휘말렸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역사교과 전문가협의회’의 검토를 거쳐 수정지시를 내렸고, 대법원은 이에 대해 올해 2월 “검정절차상 교과용도서심의회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전문가협의회 절차를 위법한 것으로 판단했다.

한필협 측은 교육부의 수정심의회란 기구가 어떤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는 ‘교과용도서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검정도서의 경우에는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교과용도서의 편찬·검정·인정·가격결정 및 발행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교과용도서심의회를 둔다’며 수정심의회에 관한 명시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 10월 교육부는 7종 교과서에 대해 578건을 수정·보완할 것을 권고했고, 집필진들은 교육부의 수정·권고가 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않았다며 이를 거부하면서도 사실 오류 등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며 623건의 자체 수정안을 내며 교육부와 갈등을 겪었다.

한필협은 나아가 교과서 검정이 3개월에서 6개월 걸리는 과정인데 수정심의회가 열흘 기간 심의를 거쳐 수정명령을 내린 것은 ‘졸속 검정’이라며 내용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지난 14일 수정심의회를 구성해 16∼27일 수정심의 작업을 진행했다.

한필협의 공동대표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수정심의회는 법적인 기구가 아니다”며 “검정제도의 정신을 교육부가 훼손하는 것을 방치하면 앞으로 교육부가 교과서를 자기 마음대로 좌우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필협 측은 이르면 오는 2일 교육부의 수정명령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으로 보인다.

6종 교과서 중 미래엔 대표 집필자인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교육부가 다음 달 3일까지 수정명령에 따른 수정·보완 대조표를 제출하라고 했으니 가처분 신청을 되도록 빨리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날 수정명령 사항을 반영한 출판사들의 수정·보완 대조표를 내달 3일까지 제출받은 후 다시 수정심의회를 개최해 내달 6일께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원에서 한필협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한필협이 자체 수정해 제출안 사항 중 교육부가 승인한 545건만 수정된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 배포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가 수정·보완 방침을 밝힌 9월 이후 2개월여 이어진 교과서 논란이 본안 소송의 1심 판결까지 일단락되지만 교육부가 다시 법적 절차를 갖춰 수정명령을 취할 수도 있고 1심 판결 결과에 따라 교과서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교육부가 3일까지 수정·보완대조표를 제출하지 않은 6종 교과서 출판사에 발행정지나 검정취소란 행정조치를 취하면 일선 학교에는 검정에서 최종합격된 8종 중 교학사와 리베르 등 2종의 교과서만 배포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출판사가 집필진 동의 없이 수정명령을 이행하고 집필진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교육부가 이를 승인하면 집필진의 법적 대응은 무력화된다.

대법원은 금성출판사 교과서 논란 때 “출판계약에서 ‘교육부 지시가 있을 경우 교과서 내용을 수정·개편해야 한다’고 약정한 점 등을 감안하면 (집필진이) 교과서 변경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출판사가 건건이 집필진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교육부는 법적 절차를 갖춰 수정명령을 내린 만큼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검정에 준하는 절차를 따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413개 교육·시민·학부모 단체 및 교육기관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선정위원회 선정 절차를 거쳐 수정심의회를 구성했다”며 “수정명령에는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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