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혔다, 우리 아이”… “부럽다, 저집 아이” 로또 유치원

“뽑혔다, 우리 아이”… “부럽다, 저집 아이” 로또 유치원

입력 2013-12-04 00:00
업데이트 2013-12-0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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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곳 지원, 1곳만이라도…” 경쟁률 14대1… 대입 방불

“어휴, 여기에 꼭 돼야 되는데 어쩌면 좋아요. 지금 몇 명이나 남았나요.”
서울 광진구 능동의 어린이회관 유치원 신입생 추첨식이 열린 3일 오후 번호가 당첨된 한 학부모가 손을 높이 든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대 쪽으로 뛰어나가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서울 광진구 능동의 어린이회관 유치원 신입생 추첨식이 열린 3일 오후 번호가 당첨된 한 학부모가 손을 높이 든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대 쪽으로 뛰어나가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네살배기 딸 아이의 손을 붙잡은 이순여(35·여)씨가 울상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 광진구 능동의 어린이회관 유치원 원장이 번호표가 담긴 상자에 손을 넣어 번호표를 하나씩 뽑을 때마다 이씨는 흰색 번호표를 보고 또 봤다. 추첨이 끝나고 이씨의 번호가 불리지 않자 그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 근처의 다른 유치원 4곳에도 원서를 냈다.

3일 오후 2시 어린이회관 유치원 3층 강당에 학부모 300여명이 발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인근 지역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유치원으로 입소문이 난 터라 미리 준비한 의자 150석이 일찌감치 동났다. 박효진 부원감은 “오전 10시에 있었던 만 4세반 추첨식에도 정원보다 훨씬 많은 지원자가 몰려 추첨으로 신입생을 뽑았다”고 밝혔다.

2014학년도 서울지역 유치원 신입생 선발 전형이 시작된 가운데 ‘복불복’ 추첨으로 학부모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학부모들은 “교육비 지원도 좋지만 아이들 모두가 원하는 유치원에 들어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공립유치원 상당수는 오는 11일 신입생을 추첨할 예정이어서 치열한 입학 경쟁은 다음 주 본격화된다.

지난달 말부터 추첨을 진행하고 있는 경기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휴가까지 내고 지난달 30일 성남시 분당의 한 유치원에 추첨하러 간 워킹맘 박윤미(38)씨는 오전 9시와 10시 유치원 2곳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박씨는 “추첨일이 안 겹치는 유치원 5곳에 원서를 넣었다”면서 “어느 1곳이라도 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서 교육의 질이나 프로그램을 따져가며 고를 처지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박씨가 찾은 이 유치원은 신입생 28명 모집에 395명이 몰려 14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웬만한 대학의 입학경쟁률에 버금가는 수치다. 박씨는 “예전에는 5~7세 아이들이 놀이학교나 미술학원에도 많이 다녔는데, 정부가 지난해부터 지급하는 월 22만원의 교육 지원금 대상자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로 제한하면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엄마가 집에서 홈스쿨을 하든, 유치원을 다니든 자녀의 연령에 맞춰 지원금을 주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일부 학부모는 입학 확률을 높이기 위해 추첨식에 참가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고육지책도 짜내고 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최모(37·여)씨는 최근 휴가 쓰기가 어려워 인터넷 카페에 알바생을 구하는 공고를 냈다. 최씨는 “동네 모든 유치원 추첨시간이 오전 10시 아니면 오후 5시에 몰려 있어 남편이 휴가를 낸다고 해도 2곳밖에 추첨을 못간다”면서 “마음이 불안해 2곳을 더 지원할 수 있도록 알바를 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역 거주자모임 인터넷 카페에는 일당 3만원과 성공 보수를 내건 ‘알바 시세표’가 나돈다. 최씨는 “유치원에 뽑혀도 오후 6시까지 맡아주는 종일반에 들어가려면 그 안에서 또 추첨을 해야 한다. 첩첩산중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2013-12-0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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