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통화 ‘그놈목소리’…젊은 여성 노린 보이스피싱의 진화

8시간 통화 ‘그놈목소리’…젊은 여성 노린 보이스피싱의 진화

입력 2016-03-07 09:31
업데이트 2016-03-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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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가로채고서도 전화 못 끊게 유도…CCTV 피하는 치밀함도

직장인 A(33·여)씨는 지난달 오전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기에서는 “○○검찰청 □□□ 수사관이다. 귀하께서는 통장 사용 사기 범행에 연루된 피의자로 수사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진 A씨에게 이 목소리는 “제가 불러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관련 내용이 있으니 확인해봐라”고 말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자 검찰청 홈페이지가 나왔다. 곧이어 A씨의 눈앞에는 사건번호와 자신의 이름이 피의자로 적힌 화면이 나타났다.

목소리는 “귀하는 수사 대상자이다. 이제부터는 담당 검사와 통화를 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을 바꿔줬다.

A씨는 다급하게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담당 검사라는 목소리는 “그렇다면 범행 피해자일 수 있다. 2차 피해가 우려되니 일단 가까운 은행으로 가라”고 유도했다.

당황한 A씨는 지시를 따랐다. 상대방은 “금융감독원과 공조를 한다. 계좌의 돈을 모두 뽑아서 금감원이 있는 서울 여의도에 가면 보호해주겠다”고 말했다.

상대방은 A씨가 계좌 잔고뿐 아니라 적금까지 깨 현금을 들고 여의도로 이동할 때까지 관련 법조문 등을 쉴새 없이 이야기하며 전화를 끊지 않았다.

A씨가 여의도역 출구로 나오자 “금감원 직원이 곧 나올 것이니 그에게 맡기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에 금감원 출입증을 건 남성이 나타나 금감원 직원이라는 명함을 건네며 A씨로부터 1천700만원을 받아 인수증을 넘겨주고 사라졌다. 전화는 이때까지도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훈계조로 A씨를 나무라기도 했다. 돈을 건네주고도 무려 3시간 통화가 이어졌다. A씨가 전화를 끊고 확인해보니 통화 시간은 무려 8시간이나 됐다.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찰청이라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반대편에서는 “○○검찰청이다”라는 대답이 나왔고, A씨는 한 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사기였다. 한동안 연결되던 검찰청 번호는 몇 시간이 지나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돈을 챙기고도 3시간이나 더 통화한 것은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공범이 달아날 시간을 벌어주려는 작전이었다.

A씨가 피해를 본 날 같은 수법으로 B(33·여)씨도 4천만원을 뜯겼고, 이달 2일에도 C(27·여)씨가 2천여만원의 피해를 봤다.

일반적인 보이스피싱과 다른 점은 피해자에게 절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으면 해당 번호를 검색하거나 수사 기관에 문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되면 교체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틈을 주지 않았다.

범인 추적도 쉽지 않다.

7일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범인들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다 폐쇄하는 추적이 어려운 전화번호를 사용했고, 현장에서 돈을 받을 때도 철저히 CCTV 사각지대로만 이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결혼 자금 등 현금이 많은 20, 30대 여성이 범행 대상으로 우리 경찰서에만 2주에 한 번꼴로 비슷한 피해가 접수되고 있다”며 “수사 기관은 절대 현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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