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지는 못하고, 놔두면 못 살겠고’…주민들 ‘철새 전쟁’

‘쫓지는 못하고, 놔두면 못 살겠고’…주민들 ‘철새 전쟁’

입력 2016-06-13 07:19
업데이트 2016-06-13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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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역 도심 주거지 근처 녹지 등이 각종 철새 도래지로 변모하면서 주변 주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

철새들은 쾌적한 환경의 서식지를 찾아 모여들지만 이들 철새 배설물이나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쾌적한 생활을 침해받는다.

‘불편하더라도 철새 보호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우세하지만, 새들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주민 불편은 심각한 수준이다.

◇ ‘철새낙원 울산’ 명예로운 간판…주민은 “쳐다보기도 싫다”

울산 태화강은 겨울철 까마귀와 여름철 백로의 최대 서식지다.

강 둔치에 있는 대나무숲에서는 겨울에 떼까마귀와 갈까마귀 5만5천여 마리가, 여름에 백로 8천여 마리가 각각 철을 난다.

까마귀떼가 일출·일몰 무렵 하늘을 뒤덮거나 백로떼가 대나무숲 위에 하얗게 앉아있는 광경은 울산의 건강한 환경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까마귀떼는 ‘겨울 진객’으로 불릴 정도로 대접받는다.

울산시는 이들 조류가 서식하는 삼호대숲 8만8천830㎡를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 서식환경을 보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울산 남구는 삼호대숲 주변에 철새전망대와 홍보관을 설치하는 등 일대를 철새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최근 본격화했다.

철새 서식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새들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이들에게 철새는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겨울 까마귀떼의 ‘배설물 공습’은 유명하다.

까마귀들은 낮 시간에 경북 경주나 경남 양산의 농촌지역까지 먹이활동을 나간다. 새벽에 나가기 전이나 해 질 무렵 돌아온 후에 전깃줄이나 주택 옥상 울타리 등에 시커멓게 모여 앉는데, 이때 배설물을 집중 투하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전깃줄 밑에 주차하지 않고, 밖에서 말리던 빨래를 일찍 걷는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운전자들이 차를 도로변에 세웠다가 배설물 폭격을 맞기도 한다.

울산시가 차량에 떨어진 까마귀 똥을 닦는 ‘배설물 청소반’을 겨울철에 한시적으로 운영할 정도다.

여름 백로떼도 우아한 자태와는 달리 주민들에게 불편을 준다.

태화강 산책로를 걷다가 백로가 서식하는 삼호대숲 옆을 지나면 악취가 코를 찌른다. 산책객들은 코를 막거나 잠시 호흡을 멈춘 채 서둘러 대숲을 지난다.

양서류와 어류를 먹는 백로 배설물은 비릿하면서 역한 냄새가 특징이다.

배설물은 강한 산성이어서 서식지 토양을 산성화하고 대나무 등을 고사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고 한때는 알칼리성인 소석회를 뿌려 일대 토양을 중화하기도 했다.

주민 김모(49)씨는 “계절을 바꿔가며 까마귀와 백로가 찾아오지만,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라며 “철새를 환영하는 분위기 때문에 주민들이 목소리를 못 내고 있지만, 누구나 같이 살아보면 도저히 환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백로 쫓으려 소나무 벌목하기도…곳곳서 원성

철새가 주민 생활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사례는 흔히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봄 충북 청주 남중학교 뒷산에 백로 수백 마리가 터를 잡았다.

백로떼가 만들어내는 각종 소음과 배설물로 인근 주민과 학생들은 극심한 불편을 호소했다.

결국 청주시와 학교 등은 백로떼가 떠난 9월 소나무 123그루를 베어내 서식지를 없애버렸다.

그러자 올해 3월에는 약 2㎞ 떨어진 서원대 여학생 기숙사 인근 숲에 백로가 날아들기 시작해 불과 3개월 만에 개체 수가 800여 마리까지 불어났다.

학생들은 악취·소음에다 날리는 깃털 때문에 더운 날씨에 창문도 열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지난해 남중학교 뒷산에 서식했던 백로떼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서원대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했다.

피해를 막기 위해 서식지를 없애자 다른 곳에 같은 피해가 나타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최근 대책 회의를 연 서원대 측은 일단 백로 서식지를 보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학교가 독자적으로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 지역사회 협의체를 구성해 백로떼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전북 전주시 송천동 건지산 백로 집단서식지에도 해마다 4∼5월에 백로떼 300여 마리가 날아든다.

이 때문에 5∼6년째 인근 주민들이 악취와 소음 등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백로 서식지의 나무와 풀에는 하얀 배설물이 떨어져 있고, 깃털과 사체 등도 골칫거리다. 배설물로 나무가 고사해 등산로를 가로막기도 한다.

전주시는 백로가 포획 금지 종인 데다 인위적으로 서식지를 옮기기도 어려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백로 사체와 배설물 등을 처리하지만, 악취와 소음은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주민 이모(64·전주시 송천동)씨는 “악취도 심하고, 배설물도 보기에 좋지 않다. 백로 울음소리도 다른 소음 못지 않다”며 “하지만 말 못하는 짐승이 그러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전주시 덕진구는 서식지를 소유한 전북대와 협의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백로 서식지를 옮기거나 백로를 쫓을 수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두 기관은 대신 9월 백로가 떠난 뒤 산책로를 정비하고 고사한 나무 등을 치우는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속초 8경의 하나로 선정된 강원 속초시 조도는 가마우지떼가 몰리면서 소나무 숲이 사라지고 볼품없는 섬으로 바뀌었다.

속초 해변에서 100여m 떨어진 해상에 있는 작은 섬인 조도에 10여 년 전부터 가마우지떼가 몰려들어 울창하던 소나무들이 가마우지 배설물에 고사하는 등 황폐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섬을 가득 채웠던 소나무숲은 현재 대부분 사라지고 살아 있는 소나무는 몇 그루 되지 않는다.

속초시는 수차례 헬기에서 물을 투하해 섬에 쌓인 배설물을 씻어내고 묘목을 심는 등 복원작업을 벌였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섬에서 가마우지를 쫓아내는 방법까지 검토했으나, 환경단체 반발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겨울철 나무서리로 유명해 전국에서 사진 동호인들이 새벽부터 몰리는 춘천시 소양강 버드나무 군락지도 이곳에 둥지를 튼 민물가마우지의 배설물로 고사 위기를 맞았다.

춘천시는 민물가마우지가 둥지를 튼 버드나무 100여 그루 대부분이 고사 상태에 놓인 것으로 파악했다.

◇ ‘철새가 우선’ 등 공존 모색 시도 눈길…“주민 보상책 필요” 지적도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철새를 배려하는 발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철새 서식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주남저수지는 매년 겨울철이 되면 2만 마리가 넘는 철새가 찾는 국내 대표적인 내륙 철새 도래지자 중간기착지다.

이곳의 대표 철새인 천연기념물 재두루미는 삵과 같은 천적을 피하고자 강이나 저수지 갈대 섬 주변 모래톱에 서식한다.

지난 겨울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수문을 닫아 저수지 수위가 4m까지 올랐고, 모래톱이 물에 잠기면서 서식지를 잃은 재두루미는 주남저수지를 떠났다.

환경단체는 창원시와 농어촌공사에 재두루미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수문 개방을 요구했다.

창원시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주남저수지 수위를 낮추는 대신 농업용수가 부족할 때 낙동강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양수비용(전기세)을 부담하기로 했다.

이후 농어촌공사는 수문을 열어 수위를 낮췄고, 모래톱이 드러나자 재두루미가 주남저수지를 다시 찾았다.

환경부와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한 창원시는 국비와 지방비 5억원 가량을 확보해 매년 9월 한 달간 주남저수지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겨울철 철새 먹이 재배사업 참여 청약을 받고 있다.

청약 주민들은 가을걷이를 끝낸 논에서 11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 철새용 보리를 재배하거나 짚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방식으로 철새 먹이를 마련한다.

한겨울 돋아난 보리싹과 짚단은 철새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철새들은 밤이 되면 주남저수지 인근 논밭을 찾아 보리와 짚단을 먹으며 겨울을 난다.

대전 서구 내동 인근 야산과 탄방동 남선공원 일원에서 집단 서식하던 1천200여 마리의 백로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울음소리와 배설물 악취로 인근 지역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전시가 ‘백로류 잠재서식지 유인 사업’ 계획을 세워 백로떼 유인에 나서기로 한 건 올해 초다.

약 4㎞ 떨어진 갑천 일대를 서식지로 정한 시는 올해 1월 소나무 숲에 백로 떼가 둥지를 튼 것 같은 모형을 설치하고 백로 울음소리가 들리는 음향시설도 놨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하천과 가깝고 수리부엉이나 황조롱이 등 맹금류인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지역을 골랐다고 시는 설명했다.

현재 이곳에 자리 잡은 백로의 수는 많지 않지만, 기존에 민원이 많았던 지역에서 집단 서식하던 광경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시는 백로들이 세종시, 충남, 충북 등으로 흩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새 서식에 대한 시민 이해를 높이되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성수 경북대 조류생태연구소 박사는 “삶의 질이 강조되면서 도심 자연환경이 개선되고, 먹잇감과 녹지가 많아지면 철새는 찾아올 수밖에 없다”면서 “인간과 조류의 불편한 충돌은 앞으로도 빈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박사는 “나무를 벌목해 철새를 내쫓으려는 발상은 이 시대와 맞지 않지만, 실제 거주민의 심각한 불편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환경교육과 홍보를 통해 철새의 가치를 알리는 동시에 해당 지역 주민의 복지 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보상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철새마을을 조성 중인 울산시 남구는 철새 배설물로 피해를 보는 주민 보상책으로 문화·체육시설이 포함된 복지센터를 신축하고, 거주민에게 정기 세차권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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