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더 주세요” 학교 급식현장 곳곳서 ‘학생-조리원’ 마찰

“밥 더 주세요” 학교 급식현장 곳곳서 ‘학생-조리원’ 마찰

입력 2016-07-10 10:27
업데이트 2016-07-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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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조리원 불친절” vs 조리원 “개인 양 맞추기 어려워”

“밥을 더 달라고 하면 바로 주지 않고 ‘배식 다 끝나면 다시 와라’고 했어요”, “못 먹는 음식이라 주지 말라고 했는데 ‘그냥 ×먹어’라고 했어요”, “음식량을 부탁하면 욕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이 급식종사자들에게 배식 양을 조절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들은 말이라며 털어놓은 불만들이다.

전국 각급 학교에서 학생과 조리원 간에 음식의 질은 물론 배식량을 둘러싼 불만과 갈등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최근 부실 급식 논란을 빚은 대전 봉산초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배식량 조절 요구에 대한 일부 조리원의 막말과 욕설이 학부모와 조리원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은 조리원들이 학생 개인의 식사량에 맞춰 배식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제한된 시간에 수명의 조리원이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음식을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조리원들이 소속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등은 조리원과 학생, 학부모 간 갈등의 상당 부분은 열악한 근무여건과 고된 업무가 원인이라며 조리원들의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 ‘더 달라, 못 먹는다’ vs ‘주는 대로 먹어’ 갈등 빈발

대전 봉산초등학교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는 부실 급식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 조리원이 어린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인격 모독적인 막말과 욕설을 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급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다수의 학생으로부터 밥이나 반찬을 적게 달라거나 못 먹는 음식은 주지 말라고 요청할 때 일부 조리원이 ‘그냥 ×먹어’, ‘지X하네’ 등 막말과 욕설을 했다는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편하게 하는 말이라고 해도 이런 비교육적인 언행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조리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많은 학교에서 적은 배식량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도 자주 제기된다.

경기도 수원의 고교생 자녀를 둔 고모(여) 씨는 “밥을 더 달라고 하면 바로 주지 않고 ‘배식 다 끝나면 다시 오라’고 하는 등 학생들을 귀찮게 해 결국 학생들이 더 먹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적절한 배식을 위한 방안일 수도 있지만 한참 성장기 학생들에게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의 한 고교에서는 ‘더 먹고 싶은 고기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돼 도교육청이 현장점검을 한 결과, 임의로 배식을 거부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반찬을 골고루 주기 위해 원하는 만큼 주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식단을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종류로 개선해달라’는 요구도 종종 제기되지만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이 먹고 싶은 음식’은 주로 가공식품이어서 건강을 고려해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식단을 짜다 보면 학생들이 원하는 식단만으로는 급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는 조리원들이 배식한 뒤 학생 스스로 식사량을 조절할 수 있게 자율배식대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배식량 불만을 해결하고 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일단 조리원이 배식해주면 자율배식대로 이동해 더 먹고 싶으면 스스로 더 담고, 조금만 먹기 원하면 밥과 반찬을 덜어낼 수 있게 하고 있다”며 “이렇게 하다 보니 학생이나 선생님, 조리원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급식 개선하려면 조리원 처우·근무환경 개선부터

교육 당국과 학교, 조리원 모두 소수 비정규직 급식종사자가 수백 명에게 배식을 하는 현 급식시스템에서는 개인맞춤 배식은 물론 친절한 서비스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교의 급식업무 종사자는 영양교사와 영양사가 9천975명, 조리사 1만2천228명, 조리원 5만2천624명이다. 각 학교에 영양교사 또는 영양사 1명, 조리사 1명, 조리원 4∼8명이 배치돼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음식을 직접 만들고 배식하는 조리원들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이 급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자주 지적된다.

학교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비정규직인 조리원들은 월 급여가 130여만 원에 불과하고 방학 중에는 일이 없어 임금도 받지 못한다. 조리원들은 학교 직원 위계 구조상 최하위에 있어 인격적 대우를 못 받는 경우가 많고 학생이나 다른 직원들로부터 무시당하기도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때문에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상여금 지급 등 처우 개선과 조리원 수를 늘려 급식실 전반의 노동강도를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3∼24일 이틀간 파업도 벌여 서울, 제주 등에서 급식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대전지부 관계자는 “짧은 시간에 수백 명에게 배식하다 보면 양을 개인 요구에 맞춰주는 것은 물론 음식을 천천히 깔끔하게 담아주기도 어렵다”며 “급식의 질과 서비스를 개선하려면 급식종사자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은 해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노동자 측 요구와는 큰 차이가 있어 임금 협상 때마다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전시교육청 급식담당자는 급식도 학생 건강과 인성 함양에 중요한 교육과정이고 급식종사자도 교육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급식종사자에 대한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예산과 제도적 제약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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