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축사노예’ 억울한데 임금 고작 3년치만 보상

19년 ‘축사노예’ 억울한데 임금 고작 3년치만 보상

입력 2016-07-18 16:06
업데이트 2016-07-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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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채권 소멸시효 3년 불과…“19년 정신·경제적 손배 청구는 가능”

청주 오창의 한 축산농가에서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19년간 강제노역한 ‘만득이’ 고모(47)씨는 임금 청구 소송으로는 제대로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현행법상 임금 채권 소멸 시효는 3년에 불과하다. 19년간 강제노역을 했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임금 청구 기간은 3년뿐이다.

고씨가 노예와 같았던 19년 삶을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법률 전문가들은 소멸 시효가 짧은 임금 청구소송 대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택할 수 있다고 본다.

손배 청구는 기간이 폭넓게 적용되는 것은 물론 고씨 외에 그의 가족도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19년 간 떨어져 살며 눈물을 흘려야 했던 정신적 피해까지 금전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고씨는 소 중개인에 이끌려 오창 농장에 왔던 1997년 여름부터 19년간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소 사료를 챙겨 주고 소똥도 치우며 축사를 관리했다.

농장주 김모(68)씨는 근로계약조차 하지 않았고, 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고씨를 부렸다.

고씨에게 노역을 강요한 농장주 김씨는 형사 처벌을 받는 것과는 별도로 고씨의 강제노역 대가를 물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천안 양돈농장에서 일하던 고씨가 소 중개인의 손에 끌려 오창 김씨 농장에 나타난 것은 1997년 여름께다. 김씨의 농장에서 벗어났던 지난 14일까지 꼬박 19년을 강제노역했다. 개월 수로는 228개월에 달한다.

지적 장애로 독자적인 사업 수행 능력이 떨어져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단순 노동만 했고, 사업주가 고정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더라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그런 만큼 김씨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고씨에게 미지급한 임금을 줘야 할 책임이 있다. 다만 임금 채권에 대한 소멸 시효는 3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김씨의 금전적 부담은 크게 줄게 된다.

반면 고씨가 당한 억울함은 커지게 된다. 인생의 황금기와도 같은 청년기 19년을 인적조차 드문 외딴 산골에서 고립되다시피해 강제노역했음에도 임금 청구는 법으로 정해진 지난 3년치만 청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체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당한 피해를 일부나마 구제받을 수 있다.

2014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들도 손배 소송을 통해 제한적이지만 추가 보상을 받았다.

5∼10년간 전남 신안의 염전에 감금돼 폭행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한 이들은 3년치 체불 임금만 받는데 그쳐 실제 근무기간보다 적게 보상받았고 최저 임금이 적용됐다는 점을 들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 1인당 적게는 1천500만원, 많게는 9천189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고씨도 염전 피해자들처럼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소멸시효가 10년인데, 이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손해만 배상받는 것이 아니다.

고씨가 처한 특수한 사정 때문이다.

고씨는 남들의 질문에 ‘예’, ‘아니요’라는 단답형 대답을 하는 게 전부일 정도로 의사 소통은 물론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이다. 당연히 농장주 김씨의 강제노역 요구에 맞서 항거할 수 없는 처지였다.

고씨가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지위를 확보한 것은 농장에서 벗어난 지난 14일부터다. 이때부터 앞으로 10년간을 손해배상 청구 소멸 시효 기간으로 봐야 한다고 법조계는 분석했다.

만득이로 불리며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지난 19년간의 정신적·재산적 피해를 앞으로 10년 이내에 모두 청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고씨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누나도 자식, 동생을 잃어버린 정신적 아픔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게 가능하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농장주의 불법 행위는 고씨가 축사에서 벗어난 이달 초까지 19년간 이어져 왔다”며 “불법 노역행위를 ‘일련의 이어진 한 개의 행위’로 본다면 지난 19년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구제받는 길이 있긴 하지만 지적 장애인이나 납치·감금 등 의사 표현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서라도 소멸시효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광복 음성노동인센터 상임노무사는 “임금 청구 소멸시효는 3년이고, 형사처벌 공소시효는 5년에 불과하다”며 “고용주의 불법행위로 인해 근로자가 임금을 받지 못한 때에는 소멸시효나 공소시효를 불법행위 기간 전체로 연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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