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15일> “청탁 거절 수월해져 홀가분하다”

<청탁금지법 15일> “청탁 거절 수월해져 홀가분하다”

입력 2016-10-12 08:13
업데이트 2016-10-1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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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들, 청탁거절 부담 없어져 긍정적 평가

대리운전·한우·인삼·화환 매출 줄어 울상고급식당 파리 날리고, 구내식당은 북적북적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도입된 지 2주차로 접어들면서 초기 혼선이 정리되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즐거운 비명’과 ‘괴로운 한숨’이 엇갈리고 있다.

공무원들은 법 도입 이후 뿌리치기 어려웠던 청탁을 거절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인근 음식점들은 문을 닫거나 종업원을 내보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른바 ‘란파라치’를 양성하는 학원과 구내식당은 북새통을 이루고 대리운전 기사들과 농가는 일감과 매출이 줄어 울상이다.

◇ ‘홀가분하다’ vs ‘오해 부담스럽다’ 엇갈리는 관가 표정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 ‘대접’을 받지 못해 공직자들이 아쉬워할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있지만 정작 공직자들은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분위기다.

그간 곤란한 청탁을 애써 거절하느라 힘들었는데 법 시행 이후에는 그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산업안전보건법 등 감독과 위법행위 수사를 맡아 사건 관련 청탁이 끊이지 않던 고용노동부는 청탁금지법 도입으로 일선 근로감독관의 근무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했다.

수사 대상인 사업주가 지인이나 친인척까지 동원해 ‘사건을 잘 봐 달라’는 청탁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이를 간단히 거절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한 일선 관서 근로감독관은 “고등학교 친구나 친척이 ‘누구누구 사장을 잘 아는데 좀 봐 달라’고 부탁하면 거절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 요즘에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두말없이 물러나더라”고 전했다.

일부 지방 노동 관서에는 민원실 앞에 ‘음료수 등 선물을 공무원에게 주는 행위를 엄금한다’고 써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적인 약속을 잡는 데도 청탁금지법을 의식하게 돼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세종청사에 내려와 있는 정부 부처의 국장급 공무원은 “식사 금액과 관계없이 당분간은 외부인과 약속을 잡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직원들과 함께 식사할 때 예전에는 상급자가 식사 금액을 내면 하급자가 커피를 사곤 했는데 이제 그런 풍경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시 공무원들도 청탁금지법 시행과 단돈 1천원만 받아도 징계하는 ‘박원순법’이 맞물리면서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특히 사례별로 김영란법에 저촉 여부를 묻는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서울시 감사업무 담당자는 “출장이나 외부 행사로 서너 시간 자리를 비우면 부재중 전화가 40∼50통 쌓인다”라며 “문의전화에 답변해준 다음 하던 업무를 계속하려고 하면 곧바로 다른 전화가 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 울상 짓는 고급 식당가…이용객 늘어난 구내식당

주변 식당가와 주점은 ‘죽을 맛’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무원들이 법 시행 초기 괜한 오해를 피하려고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바람에 손님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세종청사 주변 식당들은 예전보다 점심시간에 자리 잡기가 쉬워졌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던 세종청사 인근 도램마을 유흥가도 떠들썩한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한 고용부 사무관은 “얼마 전 점심을 먹으려고 동료 2명과 함께 삼계탕집을 찾았는데 식탁이 10여개인 식당 안에 손님이라곤 우리 셋뿐이었다”며 “밤이면 식당과 술집에 불이 꺼진 곳이 많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고 전했다.

세종청사 인근의 한 음식점 주인은 “김영란법 시행도 좋지만 이러다가는 우리 모두 다 굶어 죽을 판”이라며 “인근 음식점 점주들 사이에서는 ‘국가권익위원회 앞에서 집단행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서울청사 인근 고급 한정식집들도 예상대로 ‘된서리’를 맞았다.

한 음식점은 3만원짜리 ‘영란메뉴’가 포함된 메뉴판을 문밖에 걸어놓았지만, 정작 들어가 보니 방 8곳 중 손님이 있는 방은 둘 뿐이었다.

사장인 이모(72·여)씨는 “‘영란 메뉴’를 만들어도 우리 집은 고급 음식을 팔다 보니 ‘비싸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손님들이 안 온다”며 “손님이 없으니 식재료를 사다 놓을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음식점과 이웃한 음식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예약받는 번호로 전화를 걸자 결번이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서울시청 공무원들과 인근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음식점들은 1인당 3만원 이하의 메뉴를 내놔 이목을 끌었다.

고급 한정식집 H업소는 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지난달 28일부터 주중 저녁에 한해 죽·전채·주요리·반상·후식은 물론 주류까지 포함한 세트를 2만 9천900원에 내놨다.

인사동 한정식집 D업소는 법 시행 이후 손님이 크게 줄어 운영이 어려워지자 최근 홀과 주방의 직원을 1명씩 내보냈다.

법 시행 이전에는 예약조차 어려웠던 여의도 고급 일식집은 시행 2주가 11일 점심시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국회 인근 한 고급 일식집은 방 26개 중 12개만 예약이 돼 손님을 맞았다. 홀에도 테이블 약 30개 중 5∼6개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 식사할 뿐 나머지는 텅 비었다.

이 일식집을 운영하는 신모(43)씨는 “법 시행 이전 700만원이던 하루 매출이 300만원으로 반토막났다”며 “3만원 이하 메뉴 신설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큰 영향이 없는 음식점도 있었다. 10일 점심시간 프리미엄 한식당을 표방한 서울 광화문의 J없소 입구에는 한복을 입고 예약 손님이 올 때마다 자리를 안내하는 종업원의 발길이 분주했다.

입구 한 편에 세운 칠판에는 빼곡히 예약자 명단과 예약 인원이 적혀 있었다.

이 음식점 점장 김모씨는 “우리는 공직자보다 기업에서 오는 고객이 많아 김영란법 영향이 거의 없다”며 “그래도 법 시행 이후 각자 식대를 계산하는 손님이 간혹 눈에 띄기는 한다”고 전했다.

메뉴 가격대가 낮은 음식점들은 대부분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과 다름없는 점심시간을 보냈다.

서울 여의도의 1인 6천원 한식뷔페를 운영하는 업주 A씨는 “법 시행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고급 음식점’ 하면 떠오르는 호텔 레스토랑도 가격대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6만원대 코스 요리를 가장 저렴한 메뉴로 둔 서울 시내 한 고급호텔 중식당은 이달 들어 손님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가량 줄었다.

이와 달리 지난해부터 점심 가격을 2만 9천700원으로 내려 운영하던 서울 마포의 G호텔 뷔페식당은 하루 평균 100명이던 점심시간 손님 수가 법 시행 이후 하루 평균 150명으로 1.5배가 됐다.

법 시행에 맞춰 2만 9천900원 세트를 내놓은 N 강남 호텔도 비즈니스 고객 단체예약 문의가 늘었다고 밝혔다.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이용객이 오히려 늘었다. 정부세종청사도 오전 11시40분부터 구내식당에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식당 이용객이 많았다.

한 끼에 4천원 하는 정부서울청사 일반 구내식당은 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지만, 별실을 예약해 1만5천∼3만원짜리 단품 음식을 먹는 구내식당은 이용객이 증가했다.

식당 관계자는 “별실에서는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예전에 청사 밖에서 이뤄지던 자리가 이곳으로 옮겨온 듯 이용량이 15% 정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11일 점심시간에도 부처 차관들이 외부 인사를 초청하는 식사 자리가 예약돼 총 22인분의 음식을 준비해 둔 상태였다.

◇ 대리운전 콜, 한우·인삼 매출도 화환도 모두 줄어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술자리가 사라지고 경조사비가 줄고 선물이 간소화하자 대리기사들과 화훼업계, 농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전에 대리기사를 많이 불렀던 골프장과 노래방, 룸살롱 등 콜이 이전보다 30%나 줄었다는 게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실제로 어제 홍대와 합정 인근 도로를 지나는데 텅텅 비어있었다”며 “경기가 안 좋은 탓도 있겠지만 청탁금지법 때문이 아니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김 협회장은 “이런 과도기적 불편함이 있지만 우리 같은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김영란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법이 잘 자리 잡아 건전한 사회 풍토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눙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달 3∼7일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30% 줄었고 경매 물량도 20%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 이후 화환 수요가 급감하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화훼 거래량 감소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는 꽃바구니 반입 자체가 금지됐고, 결혼식과 장례식장에 많았던 화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임영호 화훼협의회장은 2011년에 공무원들에게 3만원 이상 난을 받지 못하게 했을 때부터 얼어붙은 화훼 경기가 더 큰 타격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법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대로 가다간 다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한우와 인삼 등 선물용으로 많이 쓰이던 품목도 매출·거래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농축산부는 전국의 대표적인 한우 식당 20곳의 일평균 매출액이 법 시행 이전과 견줘 평균 21.4%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국 대표 정육점 11곳의 매출도 시행 전과 비교해 16.9% 줄었다.

한우는 식사(3만원 이하)와 선물(5만원 이하) 가액기준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시행 초반부터 김영란법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삼 주요 제조·가공업체인 인삼공사와 농협의 관련 매출도 시행 직전 주간 대비 3.2% 줄어든 114억원을 기록했다.

◇ 2주간 서면 신고는 6건…란파라치 학원은 호황

청탁금지법 시행이 2주를 맞으면서 위반에 대한 경찰 신고 건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법이 시행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9일까지 청탁금지법 위반 사실을 목격했다는 112 신고는 모두 220건이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사례는 한 건도 없고, 대부분은 법 관련 상담을 하거나 경미한 내용이라 정부 민원안내 콜센터 110으로 전화하도록 안내했다.

서면으로 들어온 신고는 현재까지 6건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경찰은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은 신고자 실명을 기재하고 증거를 첨부한 서면신고만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112 신고 역시 현행범임이 확실시되는 경우가 아니면 현장 출동 없이 서면 신고하도록 안내한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란파라치’라 불리는 김영란법 전문 신고자들을 양성하는 학원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란파라치 학원을 운영 중인 문성옥(70) 공익신고총괄본부 대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3∼4배 늘었다”며 “지난 2주 동안 일주일에 4번 강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강의실이 작아 한 번에 30∼40명가량만 교육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 강의실을 더 늘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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