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모친상에 5만원도 안되나요?”

“부장님 모친상에 5만원도 안되나요?”

백민경 기자
백민경 기자
입력 2016-10-12 16:43
업데이트 2016-10-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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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도 기준 ‘왔다갔다’…사례집선 ‘가능’·체크리스트선 ‘불가능‘

청탁금지법 적용을 받는 공직자의 경조사비 원칙이 기관마다 달라 혼란이 커지고 있다. 직장 상사 모친상에 5만원 부조금도 하면 안되냐는 질문이 폭주하는 상황이지만 뚜렷한 답이 없어서다.

법을 만든 국민권익위원회조차 사례집에선 “주고받기가 가능하다”고 했다가 직종별 매뉴얼 체크리스트에선 “불가하다”고 하는 등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언론인, 공직자, 은행에서 주택 대출 등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공무수행 사인 등은 어느 기준에 맞춰 경조사비를 내야 할지 고심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감찰계는 경찰청 지침과 권익위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부서장의 경조사에 부서 직원들은 부조금을 내지 못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경찰청이 권익위 매뉴얼을 기반으로 작성해 각 지방청에 배포한 내부 지침을 보면 경조사비는 시행령이 정한 10만원 내에서 허용되나 직무와 관련된 사이면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10만원 이하라도 제재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지침에서 말하는 ‘직무 관련성’은 뇌물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준용하고 있는데, 판례를 보면 ‘뇌물죄에서 말하는 직무에는 법령에 정해진 직무뿐 아니라 그와 관련 있는 직무, 과거에 담당했거나 장래에 담당할 직무 외에 사무분장에 따라 현실적으로 담당하지 않는 직무라도 법령상 일반적인 직무권한에 속하는 직무 등’이라고 돼 있다.

쉽게 말해, 과거에 담당했고 현재 담당한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과 앞으로 담당할지 모르는 직무와 관련된 사람까지 모두 다 포함해 ‘직무 관련자’로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엔 또 하나의 예외 조항이 있다. 직무 관련성이 있어도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 의례 등 목적이 인정되면 10만원 이하의 경조사비 수수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예외조항과 원칙 조항 사이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적용되는 조항과 예외 조항을 모두 검토한 뒤에야 국민권익위가 별도로 배포한 공직기관 직종별 매뉴얼에 ‘8가지 경조사 자가진단 리스트’를 근거로 부서장의 경조사엔 부조금을 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8가지 체크리스트 중 7번째 항목은 “인사·예산·감사 또는 평가 등을 직접 받는 소속기관 공직자 등이 제공하는 경조사비”로 기술돼 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 기준은 경찰과 약간 달랐다.

도교육청은 청탁금지법 이전에 적용되던 ‘공무원행동강령’에 “같이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나 그 전에 같이 근무한 직원의 경조사 시 5만원 이하의 경조사비를 낼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 만큼 같은 부서의 부서장에게 부조금을 내는 것은 가능하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만, 권익위 사례집에 “담임교사가 학부모로부터 2만원짜리 커피 쿠폰을 받더라도 제재대상이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근거로, 담임교사는 학부모로부터 경조사비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경기도는 청탁금지법 담당 TF팀 관계자조차 이 사안에 대해 정확한 안내를 하지 못했다.

경기도 TF팀은 부서장의 경조사에 그 부서 직원들이 경조사비를 낼 수 있느냐고 문의하자 처음엔 “원칙적으론 안 되지만 원활한 업무수행 등 예외 조항을 근거로 10만원 이하로는 경조사비 수수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경찰과 경기도교육청의 방침을 설명하자 그제야 “직속 상급자는 인사평가가 있을 수 있으므로 경조사비를 수수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고는 “권익위조차 제대로 된 원칙을 정해주지 않은 데다가 경기도 내부 방침은 아직 정하지 않아 혼란이 많다”며 “되도록 주지도 받지도 말라고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직자 경조사비에 대해 권익위도 제대로 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례집 117페이지 99번 ‘사교·의례 등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선물’ 항목에서는 “결혼을 앞둔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있는 담당 공기업 직원으로부터 10만원 이내의 축의금을 받는 것은 사교·의례 등 목적이므로 가능하다”고 돼 있다.

하지만 직종별 매뉴얼 체크리스트 7번 항목에는 직무 관련성을 근거로 경조사비를 수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을 만든 권익위조차 유사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때문에 각 기관별로은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는 취지에서 권익위에 사례별 질의를 해놓은 상태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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