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역사교사들이 본 국정교과서…“기능 면에서도 문제 있다”

현직 역사교사들이 본 국정교과서…“기능 면에서도 문제 있다”

입력 2016-11-29 17:00
업데이트 2016-11-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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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스스로 학습하는 게 힘든 교과서” 등 대체로 부정적 평가

교육부가 28일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살펴본 현직 역사교사들은 교과서 수준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했다.

박정희 시대의 ‘공’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한 점 등 내용 논란은 차치하고 교과서의 기능적 측면에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또 교사가 가르치기에 현행 교과서보다 퇴보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현재 중·고교에서 역사,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소개해 본다.

◇ 이건홍 백영고 수석교사 = 이념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일단 교과서로서의 기능성 면에서 본다면 그동안 교육부가 추진해 온 ‘학생 참여 중심의 교육과정’에 역행하는 교과서다.

그동안 7차 교육과정과 2007,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교과서가 굉장히 발전했다. 주제별로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활동, 탐구 자료가 다양하게 제시된다거나 학생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게 하는 식의 학습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교과서는 자료들이 나열식으로만 돼 있어 교사의 설명 없이는 혼자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또 2015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내용 요소를 줄이도록 했는데 국정교과서 내용을 보니 그런 지침이 무시됐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라고 하면 청동기 시대 유물, 유적을 너무 많이 나열했다. 학생, 교사 입장에서는 그저 외울 수밖에 없다.

텍스트도 너무 많아 교과서가 아니라 개론서, 강의서를 읽는 느낌이다. 텍스트의 균형도 맞지 않는다. 어떤 페이지에는 사진이 필요 이상으로 크다.

꼭 있어야 할 내용이 빠진 것도 문제다.

위안부 문제의 경우 예전 교과서에는 대부분 한 페이지 별면으로 구성해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는 걸 학생 스스로 공감하고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새 교과서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고 분량도 축소됐다.

반면 현대사 부분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서술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교과서 기능 면에서 현행 교과서가 훨씬 낫다고 본다. 새 교과서로는 강의식 수업이 될 수밖에 없다.

개발 기간이 짧았던 한계 때문인 것 같다. 검인정은 개발하는 데 2년 이상 걸리는 데 이번 교과서는 1년 만에 완성됐다.

◇ 이성훈 충현중 교사 = 전반적으로 현재 교과서보다 페이지 수는 줄었다.

구조면에서 보면 중학교 역사의 경우 세계사와 한국사를 같이 서술하는 구조로 돼 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라고 하면 중국의 동시대와 같이 나오는 식이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같이 배우게 한다는 목적인 것 같은데 이게 꼭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찬란한 중국사와 소박한 한국사가 대비되는 느낌을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상고사의 경우 ‘환단고기’ 내용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는데 막상 교과서를 보니 그런 내용은 들어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서는 현행 교과서에서 많이 다루는 실학의 사회개혁론 관련 내용이 아주 간략한 분량으로 줄었다.

현대사 부분은 객관적 서술을 하는 듯하면서도 미화, 이런 부분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유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그 바로 다음 줄에 ‘위기와 갈등 속에서도 경제가 도약하다’라고 쓰는 식이다.

이전 교과서는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따로 서술했지만 지금 교과서는 ‘갈등도 있었지만 경제가 도약했다’는 식으로 연결지었다.

5·16도 군사정변으로 썼지만 경제발전 부분을 교묘하게 연결시켜 전체적으로 박정희 시대를 긍정 서술했다. 1980년대도 그런 식의 서술 구조다.

◇ 김찬수 동원고 교사 = 정당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집필진을 구성하다 보니 문제점이 드러난 교과서인 것 같다.

일제시대 같은 경우는 뉴라이트 사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할 수 있는 경제학자들이 중심이 돼 집필진을 만들어 서술하다 보니 그런 관점에 따라 서술됐다.

근현대사를 주로 살펴봤는데 근대사는 얼핏 보기에 교학사 교과서에서 지적됐던 문제를 극복하려 나름 노력한 점이 보였다.

식민지 시대 역시 (노골적으로) 친일사관이라고 트집 잡을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현대사에서는 의도한 대로 이승만 건국 국부론, 박정희의 경제개발 공(功)을 강조하는 의도성을 느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좀 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현대사 부분 관련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과 경제사 등을 공부하는 사람의 관점은 다르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현상을 보고 미래 지향적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실상을 많이 쓴다고 좋은 교과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북한 문제의 경우 과거 많은 충돌과 도발, 전쟁이 있었는데 그것을 구태여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는 남북 화해에는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군사학과 냉전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서술하는 게 우리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정교과서의 또다른 문제는 내용을 줄이다 보니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지 않아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역사관에만 치중하다 보니 논리적 완성도가 떨어져 많이 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런 교과서는 학교 현장에서 쓰면 역효과만 난다.

교과서 채택 방식은 다양한 역사를 서술한 교과서를 학교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학교 현장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국정화 논란에서 문제는 학교 선생님들을 너무 무시했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교육과정 내용을 보고 강조할 건 강조하고 비판할 건 비판한다. 학생들 역시 가르친다고 다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 판단해서 받아들인다.

그러나 국정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교과서만 만들어놓으면 시키는 대로 그대로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단순한 생각이다.

◇ 황선의 백영고 교사 = 고려사 부분을 봤는데 많이 이상했다. 고려사 내용은 검정교과서와 거의 다를 부분이 없다.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과도하게 정치사 중심이라는 것이다. 보통 정치, 경제, 사회, 문화사가 고루 균형을 이루게 마련인데 고려사는 사회사와 경제사 비중은 거의 없다시피 줄여놨고 대신 정치사를 일반 참고서처럼 아주 상세히 개괄해 놨다.

그중에서도 주로 인물사 중심 서술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보통 교과서는 ‘고려는’으로 주어를 시작하는데 국정교과서는 ‘태조는’, ‘광종은’ 이런 식으로 인물이 무엇을 했다는 식으로 주어를 서술했다. 이게 자칫하면 영웅사관으로 흘러갈 수 있다.

또 ‘광종이 과감하게 숙청을 해서 왕권을 안정시켰다’ 이런 표현이 있는데 ‘과감하게’ 같은 것은 위험한 표현이라 교과서에는 써서는 안된다.

또 다른 특징은 국가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국가, 영웅 이런 부분이 부각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과서가 완성본이 아니어서 그런지 편집 자체도 조악했다. 보통은 교과서에서 학생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내용이 구성돼야 하는데 그런 활동은 거의 없이 개론서처럼 텍스트와 사진으로만 구성돼 있어 그런 점이 미흡해 보였다.

가장 좋은 교과서 방안은 국정교과서를 보급하지 않는 게 정답이다. 만약 강행하려고 한다면 현실적으로는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를 혼용해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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