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살처분 보상금은 슈퍼甲 유통업체 차지“…축산농은 빚더미

“AI 살처분 보상금은 슈퍼甲 유통업체 차지“…축산농은 빚더미

입력 2016-12-15 09:41
업데이트 2016-12-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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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오리 입식비, 사룟값 주고나면 적자…재기도 막막”“AI 활개치는 겨울 사육 싫지만 불이익 당할까 말도 못해”

충북 진천군의 A씨는 요즘 텅 빈 오리 축사를 바라보면서 연신 긴 한숨을 내쉬는 게 일이 됐다.

자식처럼 키우던 8천여 마리의 오리가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려 모두 살처분되면서 감당하기 어렵게 쌓일 빚 걱정 때문이다.

A씨는 “살처분 보상금이 나오긴 하지만 새끼오리 입식비와 사룟값 등을 빼고 나면 빚을 떠안아야 할 처지”라며 “갑의 위치에 있는 유통업체들이 AI 피해를 온통 축산농가에 떠넘기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오리 사육농가들은 대부분 대형 축산 유통업체에 계열화돼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새끼오리와 사료를 공급받아 40여 일간 키워 출하하면 유통업체로부터 위탁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정부는 살처분한 오리에 대해 시세를 반영해 보상금을 지급한다. AI 양성 반응이 나온 농가에는 보상금을 20% 감액해 지급한다. 소독상태 등의 기준에 따라 최대 80%까지 감액한다. 보상금을 20%만 받는 농가도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통업체들은 보상금 감액에 따른 부담을 모두 농가에 떠넘긴다. 이 때문에 살처분 보상금을 받더라도 농민들이 손에 쥐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심지어 빚더미에 오르는 상황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오리 한 마리당 보상금이 6천원으로 책정된다면, AI가 발생한 농가의 살처분 보상금은 4천800원에 불과하다.

유통업체들은 이 보상금 가운데 1천원 가량의 새끼오리 입식비와 4천원 가량의 사룟값을 요구한다. 이럴 경우 살처분 보상금을 받더라도 농가들은 1마리당 200원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

여기에 더해 축사 난방비, 인건비, 톱밥 구입비 등은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이 떠안게 돼 농가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AI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의 부담으로 남고, 유통업체는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는 셈이다.

일부 농민들은 매년 겨울철에 발생하는 AI를 걱정해 오리 사육을 포기하고 싶지만, 유통업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불이익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겨울 사육에 나서기도 한다.

오리 사육 농민 B씨는 “AI가 걱정돼 겨울철에 오리 사육을 하지 않겠다고 업체에 말했더니, 내년 봄에 오리 새끼를 제때 공급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올겨울에도 마지 못해 사육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농민들은 이런 불만을 드러내놓고 얘기 하지도 못한다.

만일 유통업체에 밉보이면 그나마 해오던 오리 사육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B씨는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말을 유통업체들이 알게 되면 ‘아웃’될 것”이라며 “직장으로 말하면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셈인데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에서 그냥 놔두겠느냐”고 반문했다.

AI가 발생, 좌절한 농가들은 재기하기도 쉽지 않다.

AI 발생 농장이 재입식하려면 우선 가금류 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돼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AI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가금류의 이동제한 해제는 살처분이 끝난 뒤 30일이 지나야 가능하다.

AI가 창궐했던 2014년 충북에서는 처음 발생한 지 88일 만에 이동제한이 풀렸다.

그 뒤 축사에 쌓아 놓은 분변 등을 처리하고 3주간의 입식시험과 분변 바이러스 검사 등을 한 뒤 비로소 재입식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재입식을 하더라도 새끼 오리를 키워 출하하는 데 40여 일이 필요하다.

결국, 가금류를 몽땅 살처분한 축산농가들이 재입식해 출하해 돈을 만지려면 3∼4개월 이상은 족히 걸린다.

이 기간 축산 농민들은 돈이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A씨는 “우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해 죄인처럼 생활하고 있지만, 모든 책임을 농가에 떠넘기는 것을 보면 억울하다”며 “언제 다시 오리를 사육할지도 예상할 수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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