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위치추적’ 백운기 박사 “최악의 AI, 철새는 죄가 없다”

‘철새 위치추적’ 백운기 박사 “최악의 AI, 철새는 죄가 없다”

입력 2016-12-29 09:48
업데이트 2016-12-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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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다고 바이러스 탓할 수 없듯 매뉴얼 안 지키면 소용없어”

사상 최악의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이 중국에서 날아온 철새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내 전문가가 철새를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혀 주목된다.

국립중앙과학관 백운기 박사는 29일 연합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매년 철새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방역에 활용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매뉴얼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며 “농가를 드나드는 사람 및 차량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AI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박사팀과 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2013년 국내 최초로 야생동물 위치추적기 ‘WT-200’을 개발, 이동 경로를 추적해오고 있다.

이 장치를 철새의 몸에 붙이면 이동 경로가 가까운 이동통신망 기지국으로 송신돼 웹이나 스마트폰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한번 부착하면 1년 이상 추적이 가능하며, 국내를 넘어 북한, 중국, 몽골로 이동한 철새의 위치 정보를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 연구를 위해 외국의 인공위성 위치추적기를 이용해야 했지만, 20g 정도로 경량화한 추적기를 직접 동물의 몸에 붙여 정보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과학관은 2013년부터 환경부와 공동으로 오리, 기러기 등 철새가 먹이터와 잠자리를 찾기 위해 이동하는 경로와 시간대별 행동 패턴, 정확한 사이트 위치 등을 파악 중이다.

현재까지 누적 3천여 마리를 예찰해왔으며, 이런 빅데이터를 토대로 매년 사전 소독과 방역에 활용하고 있다.

과학관이 환경부와 함께 올해 AI 발생의 원인이 된 철새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청둥오리 등 몇몇 종류의 철새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북부까지 날아갔다가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백 박사는 “처음 AI 발생은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철새 도래지가 아닌 곳에서도 AI가 많이 발생한 점 등으로 미뤄 새가 전적으로 바이러스를 옮긴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년간 연구를 통해 매년 소독을 하고 모니터링을 하지만, 농가를 드나드는 차량이나 사람이 옮기는 것까지는 통제되지 않아 화를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인근에 철새 도래지가 없는 전남 구례 오리농장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기도 했다.

앞서 농림축산검역본부 AI 역학조사위원회 역시 AI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역대 최악의 사태로 치달은 것은 사람이나 차량을 통해 농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역학조사위는 지난 22일 역학조사 중간 결과 발표에서 충북 음성·진천, 경기 포천 등의 경우 AI 확산이 사료 차량과 가축운반 차량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백 박사는 “사람이 감기에 걸린다고 바이러스 탓을 할 수 없듯이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철새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검역원에서 농가에 소독 조치를 전달해도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철새 도래지를 폐쇄하는 것은 AI 확산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I가 이례적으로 퍼지자 전남 순천만습지와 낙동강 을숙도 에코센터 등 전국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가 폐쇄 조치에 들어갔고, 울산시는 내년 2월 예정됐던 철새를 주제로 한 국제 행사 ‘아시아버드페어’(ABF)를 연기했다.

백 박사는 “농가에 사료를 배달하고 계란을 반출하는 차량에 대한 위치추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년 반복되는 AI 재난을 막으려면 농림축산식품부·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별로 진행되는 연구를 통합해 공동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등 효율적인 콘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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