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不·on)한 회의] 송도 불법주차·병역특혜 논란, 비상식·불공정에 대한 분노인가

[불온(不·on)한 회의] 송도 불법주차·병역특혜 논란, 비상식·불공정에 대한 분노인가

오세진 기자
입력 2018-09-06 22:26
업데이트 2018-09-0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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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주의 키워드를 ‘분노’로 봤습니다. ‘송도 불법주차’ 사건이나 ‘병역특례’ 논란이 불공정, 비상식에 대한 분노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회의가 이어지니 분노 표출의 현상과 원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인식의 흐름과 변화도 함께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하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이번 ‘불온(不on)한 회의’에서는 우리가 왜 이렇게 와글거렸는지는 가늠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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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민이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은 사건이 일어났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민이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은 사건이 일어났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민이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지역주민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며 항의했다.  독자 제공
지난달 29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민이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지역주민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며 항의했다.
독자 제공
부장: 50대 여성이 자신의 차에 불법주차 스티커를 붙인 데 화가 나서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고의로 막은 사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는데.

달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죠. 아파트 입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봤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차분했어요. 문제의 차주가 누구인지는 입주자 대표단 몇 명만 알고 있었고, 대부분 “그 사람 신원은 지켜주자”, “불편을 겪긴 했지만 경찰 조사가 들어갔으니 거기서 해결할 문제다”, “차주가 차를 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물론 차주에게 사과도 요구했죠. 비상식적인 사건을 눈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상식선에서 움직였고요. 그런데 오히려 네티즌들이 더 분노해서 찾아가고, 차주의 신상을 털고…. 인터넷에서 논란이 너무 증폭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호: 그게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자신이 만난 사람에 대한 인상은 그 사람의 단면이잖아요. 어떤 사건이 터지면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던 이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단면을 털어놔요. “내가 아는 이 사람은 이렇더라”는 식으로. 그런 단면이 인터넷의 어느 공간에 모여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거죠. 사건 가해자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형태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비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집단지성의 덫에 걸리는 거죠. 우리가 집단지성을 발휘해서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믿음. 사건 당자사들의 당시 사정 따위는 관심이 없어요.

달란: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사안은 기사화할 가치가 있죠. 정보 차원에서요. 하지만 가끔 논란이 커질 때가 있어요.

진호: ‘굳이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일인가’라는 고민, 기자들은 결국 ‘알면 재밌을 만한 일’에 많이 흔들리죠.

부장: 그러면 송도 불법주차 사건은 알려야 했던 일이었을까.

달란: 분명 화제성은 컸지만, 논쟁의 흐름이 ‘김 여사’(운전을 못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사화에 대한 고민은 여전합니다. 지금 여성 회원이 많은 인터넷 카페에서는 ‘만일 차주가 남자였다면 이렇게까지 분노했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거든요.

진호: 확실히 맞는 지적이에요. 물론 차주가 남자였어도 이 사건은 화제가 됐겠지만 남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신상이 노출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최근에 인천 자유공원에서 차량 난동을 부린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 보고 ‘미쳤다’고 생각해도 ‘저 놈 누구야? 한 번 파헤쳐 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죠.

세진: 이 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소비하는지보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나’에 초점을 맞춰 봤어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다는 건, 분명 잘못이죠. 사건이 며칠 동안 계속된 뒤에야 사과문을 내놨고요. 저렇게 행동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부장: 보통은 ‘분노조절장애’로 판단하지만, 상식 밖의 행동을 한 사람을 다 그렇게 보면 진단과 해결의 여지가 없어지겠지.

진호: ‘사적 응징’으로 보기도 합니다. ‘자신이 당한 것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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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남자축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손흥민 선수의 병역면제가 화제가 됐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남자축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손흥민 선수의 병역면제가 화제가 됐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부장: 또 다른 분노는 ‘병역특례’에서도 드러났는데.

진호: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 대표팀이 4강까지만 진출했는데도 선수들이 모두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때도 불공정하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들끓지는 않았죠.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이젠 많은 사람들이 랭킹의 수준을 나름 가늠하고 있는 것이죠. 평소 40~50위를 하던 팀이 당시 월드컵 4강에 진출했으니까, 이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고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은 야구든 축구든 상대팀 전적에 비해서는 우리가 월등한 편인데도 아슬아슬하게 금메달을 딴 터라 논란이 크죠. 게다가 이번에는 스포츠냐 대중문화냐의 문제로 번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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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네티즌들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낳고 있는 방탄소년단도 병역특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빅히트 제공
일부 네티즌들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낳고 있는 방탄소년단도 병역특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빅히트 제공
달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은 ‘손흥민은 왜 면제돼요’가 아니라 ‘방탄소년단(BTS)는 왜 면제가 안 돼요’라는 문제였습니다. 사실 대중문화 안에서도 병역특례 적용이 옳은지 여부에 대해 갈릴 거라고 봐요. 미국 음악차트인 빌보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차트 1위’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여론이 병역특례 제도에 불만이 많아서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 여론이 바뀔 때마다 이걸 손볼 것이냐라는 문제도 생기죠.

진호: BTS의 병역 면제를 반대하는 쪽은 “과연 BTS 성과가 국가를 대표하는 일이냐”, “상업적인 성공에 더 가깝지 않느냐”는 의견을 보입니다. 이 의문에 손흥민 선수를 대입하면 “그렇다면 손 선수는 국가를 위해 활약했나”, “프로 무대에서의 성공을 위해 뛴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한 겁니다.

경근: 가끔 우리가 스포츠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북한과 비슷한 부분이 보입니다. 우린 분단국가이지만 실제 전투는 거의 하지 않죠. 그래서 스포츠에 등치시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일본, 미국한테는 져도 남한은 꼭 잡아야 해요. 이런 점을 정신교육시키기도 하죠. 하도 한국과 대항전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보니까, “지는 선수들은 아오지 탄광에 보낸다”는 소문도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안 보내거든요.(웃음) 특정국가의 경기를 대하는 자세는, 남북이 다르지 않은 거죠.

진호: 스포츠에 대한 개념이 ‘국가 위상’에서 ‘개인의 자아실현’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병역특례의 논의 대상도 더 확대된 것이 아닐까요. 세계 강국을 꺾었다는 자부심도 뿌듯한 일이지만, 한창 잘나갈 때 활동을 접고 군대에 가야 하는 현실적인 안타까움.

달란: 요즘 그런 얘기 나오고 있잖아요. 마일리지를 쌓아서 일정 수준이 되면 병역을 면제해 주는 제도로 바꾸자고.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는 게, 정말 국위선양을 할 만큼 특출하지 않은데 선수 생활을 오래해서 마일리지를 쌓고 군대를 안 가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지금 우리나라는 ‘예술과 체육 분야에서 국위선양에 현저한 공이 있는 사람에게 병역을 면제해 주니까. 그리고 또 생각해 봐야 할 게, 올림픽 양궁 1등과 월드컵 8강 진출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마일리지 가중치를 부여할 때 종목별 특성도 고려해야 하고. 병역문제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진호: 젊은이들의 재능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병역특례 제도가 일정 부분 필요하죠. 시대가 변하면서 중요한 요소들도 바뀌게 마련이죠. 그에 따른 새로운 특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은 대중문화의 파급력도 국위 선양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건데, 그 영향력을 너무 제로로 보는 건 아닌가 싶어요.

세진: 사실 병역특례 논란이 기본적으로 징병제여서 발생하잖아요. 지원병제로 바꾸면 논란이 안 생기지 않을까요. 분단 현실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방의 의무를 병역으로만 수행할 필요는 없잖아요. 병역 외에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이를테면 대체복무도 그중 하나인 거죠. 예술인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병역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달란: 지원병제는 궁극적으로 나갈 방향인 건 확실해 보여요.

진호: 하지만 분단 현실이 바뀌어야 되는 것이니까. 종전선언 후에 남북이 서로 군축을 하기로 약속하고, 그것이 실제로 심도 있게 진행되면 지원병제로 바뀔 수 있겠죠. 병역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게 우리의 현실인 거죠.

달란: 만약 연말에 종전선언이 되면…. 마침 남북 정상회담이 18~20일로 잡혔어요. 종전선언 논의를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정리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8-09-07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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